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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1.13 20:40:0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이세좌와 연산군과의 악연은 역사에서 자주 거론된다. 이세좌는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내릴 때 약사발을 가지고 간 인물이다. 이른바 봉약관(奉藥官)이다. 결국 이세좌는 이 사실을 안 연산군에 의해 극형을 당한다.

전회 소개했던 내용이다. 대대로 문벌이 높은 가문을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닌 신라, 고려, 조선를 일컫는다.

조선전기의 삼한갑족 1위는 왕족 전주이씨를 제외하고 청주한씨다. 그러나 청주한씨는 한명회를 정점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뒤를 이은 문벌가문이 광주이씨다. 그러나 광주이씨도 연산군대의 사화로 가문이 크게 위축된다. 그 전환점에 서있는 인물이 앞서 언급한 봉약관 이세좌다.

이세좌의 집안 조카뻘되는 인물로 이수공(李守恭·1464∼1504)이 있다. 그는 1498년 무오사화 때 '난언'(亂言)을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도 창성(昌城)으로 유배됐다. 이때의 난언은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의미한다.

"강경서·이수공·정희량·정승조는 난언(亂言)한 것을 알면서도 고발하지 아니하였으니 아울러 곤장 1백 대에 3천 리 밖으로 내쳐서 봉수군(烽燧軍) 정로한(庭爐干)으로 정역(定役)하고…"-<연산군일기>

'정로한'은 불을 피우거나 횃불을 밝히는 일에 종사하는 하급 일을 말한다. 조선시대는 조례(궁궐 머슴)·나장(병조의 형졸)·일수(지방관청 머슴)·조군(漕軍)·수군·봉수군·역졸 등을 이른바 칠반천역(七班賤役)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양민의 신분이기는 하나 일이 너무 힘들었다. 때문에 천민 대접을 받았다.

그는 유배지에서 3년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갑자사화(1504년)를 맞았다. 비극은 사소한 것일 수 있는 무덤에서 시작됐다. 연산군 생모 폐비윤씨(14445~1482)는 남편 성종으로부터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묘지 위에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윤씨지묘'라는 표석이 세워졌다.

여우가 폐비윤씨 무덤에 굴을 파는 사건이 일어났다. 연산군은 이를 불효로 생각했고, 따라서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다. 이른바 천묘(이장)이다. 이수공은 이에 반대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그대들만 효(孝)를 말하고, 나는 효를 말하면 안되는가" 식으로 반문을 한다. 이수공은 귀환 3년만에 또 다시 국문장에 끌려나왔다.

그러나 그가 반대한 것은 천묘 자체가 아니라, "묘를 옮기는데 도감까지 설치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도감은 어떤 일을 하기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기구를 말한다.

국문이 시작되자 이수공은 "다만 천묘하는 일과 공력이 많지 아니하므로 도감(都監)을 둘 필요가 없다 한 것이다…"(연산군일기)라고 말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그는 목이 잘리는 참형에 처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극돈(李克墩·1435~1503)은 수공의 삼촌이면서 훈구파의 일원으로 무오사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수공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사림파, 즉 김종직의 사람에 속했다. 이는 그가 살던 거주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한때 우리고장 영동 황간에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곳에서 추풍령을 넘으면 바로 경상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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