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0.11.28 17:50: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고려말기 혁명파들은 불교를 비판했다. 특히 '불씨잡변'(佛氏雜辨)을 지은 정도전이 가장 혹독하게 불교를 비난했다. 이때의 '불씨'는 석가모니를 의미한다.

고려 말기 혁명파들이 불교를 공격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절(寺)은 '사찰경제'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막강한 경제력을 쥐고 있었다. 당시 혁명파는 이 경제력을 빼앗기 위해 사찰을 공격했다.

따라서 조선전기 서원(書院)은 절을 파괴한 후 그 자리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백운동 서원의 후신)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본래 숙영사(宿永寺)라는 절터였다. 소수서원 입구에 서있는 당간지주(보물 제 59호)가 이를 증명한다.

조선의 3대 기인으로는 대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함, 북창 정렴 등이 꼽히고 있다. 이중 정렴(1506~1549)은 천문·의학·복서·그림 등 모든 방면에 두루 뛰어났다. 이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실록에 남겨져 있다.

'정경세가 아뢰기를, "옛날에 정염이란 자가 있어 심통술(心通術)을 얻었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는 이 사람이 의술을 잘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 말은 듣지 못하였다. 학문의 공도 있었는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그 점은 듣지 못했고 점을 잘 치고 의술을 잘하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고 합니다" 하였다.'-<선조실록>

정렴이 의술에 뛰어났다는 사실은 조선 인조 때의 문신 박동량이 지은 기재잡기(寄齋雜記)라는 역사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인조 임금의 마지막을 지키게 된다. 일종의 어의(御醫)였던 셈이다.

'인종의 병이 매우 위독하였을 때 정승 권철(權轍)이 사인으로 공사를 가지고 이상 윤임(尹任)에게 갔었는데 마침 대명전 마루에서 단령을 벗고 누워서 자고 있으므로 깜짝 놀라 물러나왔다. 북창 정렴이 내의의 여러 제조들과 들어가 진찰해 보니, 상감의 병세가 벌써 숨이 가물가물하고 있는데…'-<기재잡기>

그러나 그의 박학다식함과 벼슬에 비해 그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적게 남아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아버지 정순붕(鄭順朋·1484~1548)과 시국관이 크게 달랐다.

정순붕은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小尹)으로서 윤원형(尹元衡) 등과 함께 윤임(尹任) 등 대윤(大尹)을 제거하는데 적극 활약한 인물이다. 을사사화의 중심적인 인물인 셈이다. 정렴은 아버지가 많은 선비를 죽이고 귀양보내자 벼슬을 그만두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에 기록이 많지 않은 이유가 된다.

'그 아버지가 을사년에 고변을 올릴 적에 극력 말렸으나, 듣지 않고 인하여 크게 거슬려서 집에 용납되지 못하고 과천 청계산, 양주 괘라리에 많이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으니, 나이 40 남짓하였다.'-<동각잡기>

정렴이 우리고장과 인연을 나누고 있다. 그의 위패가 청원군 현도 노봉서원에 봉안돼 있었다. 1615년(광해군)에 건립된 이 서원은 청원군 최초였으나 고종 2년(1865)에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된 뒤 복원되지 못하고 터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서원터는 본래는 석암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서두에 절터와 서원 관계를 장황스럽게 설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