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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지명 어디서 유래했나

'수심이 얕다'는 뜻의 '無深川'이 변한 말?
남석교 매몰 원인도 이것으로 설명 가능
'대교천·무심천' 지명어 한때 공존한 듯
불교용어 無心 관련설은 시간상 안맞아

  • 웹출고시간2010.06.30 19:03:2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 주

무심천은 우암산과 더불어 청주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무심천은 인구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도심형 하천이어서 수질, 기후 등 도시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무심천은 적어도 청주의 상징어가 됐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의외로 많다. 무심천의 인문, 생태, 역사, 사건, 미래가치 발굴 등의 내용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충북일보가 지난 5월 흥덕구 운천동 무심천 수변가로 이전했다. 이번 연재는 이와도 관련이 있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무심천 지명, 어디서 유래했나'이다.

호서지도 중 충청도 전체 지도로, 상당산성이 뚜렷히 표시돼 있다.

지역 어문 전문가들이 지명 무심천의 유래를 풀기위해, 적어도 지역대학에 국문과가 생긴 이래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 왔다.

그 결과, △불교용어 '무심'(無心)에서 왔다는 설 △무심하게 말없이 흐르는 내(川)라는 설 △수심(水深)이 없는 내의 '무심천'(無深川)이 변한 것이라는 설 △'무심둑' 내지 '무성둑'에서 파생됐다는 설 ▽중국 지명 '沁川'(심천)을 차용했다는 설 등이 등장해 있다.

일견봐서는 불교 관련설이 유력해 보이나 시간적 논리가 거의 맞지 않고 있다. 청주 무심천 수변가의 불교는 고려 때 중흥했고, 반면 지명 무심천 내지 대교천은 조선 후기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충북대 김진식 교수가 지난 90년대 주장한 수심(水深)이 없는 내라는 뜻의 '무심천'(無深川)이 변한 것이라는 설이 비교적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에는 무심천에 대한 어떤 표기나 기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지리지와 충청도읍지, 호서읍지, 청주군읍지 등 읍지류에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당시 지명은 지금의 '무심천'이 아닌 '대교천'(大橋川)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1530) 청주목 편에는 '大橋川 在州南一里 源出赤峴 流入吳根津 大橋 卽情盡院前橋'라는 문장이 보인다.

의역하면 '대교천이 청주남쪽 1리에 위치하는데 수원(水源)은 적현에서 출발하고 오근진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교는 정진원 앞의 다리를 말한다' 정도가 된다. 이때의 '대교'는 '남석교'(南石橋)를 지칭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명인 '無心川'은 이보다 한참 늦은 1912년 5월19일자 매일신보에 처음 등장한다. 이를 제작 기술상 불가피하게 현대문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又는 無心川의 橋梁도 六十四間의 土橋가 架設되엇는되 是는 土橋로되 万圓을 投하엿다하니'

김 교수는 결론을 "무심천에 대한 이름은 1900년대를 기준으로 분명하게 나뉘는데, 이전 이름은 '大橋川'이요, 이후 이름은 '無心川'이다"라고 정리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유로가 변경되고 토사가 쌓이면서 남석교가 매몰됐고 △이후 언중들은 수심이 깊지 않은 관계로 '無深川'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후 이 '無深川'이 표기의 편리성을 좇아 지금의 '無心川'이 된 것으로 파악했다. 김 교수는 "無深과 無心은 동음어이지만, 한글발음 '무심'이 '無心'과 의미상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본 것 같다" 밝혔다.

적어도 김 교수의 주장은 당시에는 꽤나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해동지도 중 청주목 지도 일부로, 좌측에 하천이름 '無心川'이 보인다.

그러나 지난 1998년 서원향토사연구회가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호서지도(湖西地圖·보물 제1589호) 청주목 지도에 지명 '無心川'이 쓰여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無心川'은 1900년대초가 아닌 적어도 200여년 전부터 언중들 사이에 유통됐음이 확인됐다.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된 해동지도(보물 제1591호)에도 한자로 쓴 '무심천' 지명이 뚜렷히 보이고 있다.<그림 참조>

그렇다고 김 교수의 연구 성과가 물거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대교천'과 '무심천'이 일정기간 서로 공존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김승환 교수가 언급하고 있다.

그는 "행정과 제도상의 공식명칭인 '대교천'과 민중과 백성들이 사용한 민간 지명어 '무심천'이 일정한 시간 동안 함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도움말: 충북대 국어교육과 김진식 교수, 김승환교수, 청주백제유물전시관 강민식 학예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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