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0.06.29 18:33:4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유배에 관련된 형벌 용어는 의외로 많다. '도배'(徒配)는 도형에 처한 뒤 유배(귀양)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도형은 징역, 즉 중노동을 의미한다. 장배(杖配)는 매질을 가한 후 귀양 보내는 것을 일컫는다. 이밖에 찬출(竄黜)은 벼슬을 빼앗고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찬적(竄謫)도 같은 표현이다.

유배형 중 어느 특정 지역을 정하여 머물게 하는 것을 부처(付處)라고 한다. 정배(定配)도 거의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도중에 유배지를 환경이 더 안 좋은 곳으로 옮기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배(移配)라고 한다. 그 반대는 양이(量移)로, 멀리 유배된 사람의 죄를 강등하여 서울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것을 일컫는다.

여말선초에 유배와 복권을 밥먹듯이 한 인물이 있다. 우현보(禹玄寶·1333~1400)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자 우왕은 우현보를 좌시중에 임명하고 반군 세력을 방어토록 명령한다. 좌시중은 종1품에 해당할 정도의 높은 벼슬이다.

이성계의 회군이 성공하면서 우현보는 좌시중에서 파직됐다. 회군에 성공한 후 이성계는 명분을 축척하기 위해 '뜸'을 많이 들인다. 이때 공양왕이 잠깐 등장했고, 우현보도 복권이 돼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는 우현보가 공양왕과 인척 관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현보의 장손은 성범(成範)이라는 인물로, 공양왕의 사위다.

얼마안가 이른바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성계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자, 윤이·이초가 명나라에 몰래 들어가, 이성계가 장차 명을 치려 한다고 밀고했다. 고려 조정에 이 여파가 강하게 밀어 닥쳤다. 이색, 우현보, 권근 등 당시 보수파 유신(儒臣)들이 대거 유배됐다. 1392년 이방원 일파에 의하여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됐다. 이때 정몽주의 시체를 거둬 장례를 치룬 인물이 우현보다. 그는 그 직후 탄핵을 받고 경주에 유배됐다.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이때 우현보는 이래(李來)라는 인물로부터 방간의 반란소식을 듣고, 이를 이방원(태종)에게 알려준다. 그 공으로 추충보조공신에 봉해졌다. 이 부분은 이해가 잘 안가는 면이 있다. 우현보는 점진적인 개혁을 원했던 인물로, 이는 이성계 일파와 불편한 관계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태종의 공신'으로 책록된다. 이런 이유가 작용했다.

'우홍부는 시중(侍中) 우현보(禹玄寶)의 아들이었다. 우현보가 계해년 과거의 지공거(知貢擧)였는데 김한로 등이 모두 그 문생(門生) 이었고, 임금도 잠저(潛邸)에 있을 때 또한 그 시험에 합격하였다'.(정종실록)

본문중 지공거는 과거를 볼 때의 시험감독관을, 잠저는 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집을 의미한다. 당시 과거 합격자들은 자신을 입신시켜 준 시험관을 '은문'(恩門)이라 칭하며 평생 스승으로 모셨다. 그들 사이에는 스승과 제자보다도 더 강한 인연이 맺어졌다. 우현보와 이방원도 그런 관계였다.

앞서 단양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우현보는 우리고장 단양 인물이다. 단양군 적성면 애곡에 단양 우씨 시조단과 재실인 희역당이 위치한다. 그리고 우탁의 출생지인 적성면 현곡리에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고려 명신인 우탁은 우현보의 할아버지가 된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김명철 제천교육장

[충북일보] 제천 공교육의 수장인 김명철 교육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김 교육장은 인터뷰 내내 제천 의병을 시대정신과 현대사회 시민의식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모습에서 온고지신에 바탕을 둔 그의 교육 철학에 주목하게 됐다. 특히 짧은 시간 임에도 시내 초·중·고 모든 학교는 물론 여러 교육기관을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활동하는 교육 현장 행정가로서의 투철함을 보였다. 김명철 제천교육장으로부터 교육 철학과 역점 교육 활동, 제천교육의 발전 과제에 관해 들어봤다. ◇취임 100일을 맞았다. 소감은. "20여 년을 중3, 고3 담임 교사로서 입시지도에 최선을 다했고 역사 교사로 수업과 더불어 지역사 연구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그 활동이 방송에 나기도 했고 지금도 신문에 역사 칼럼을 쓰고 있다. 정년 1년을 남기고 제천교육장으로 임명받아 영광스러운 마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지난 9월 처음 부임할 당시에 지역사회의 큰 우려와 걱정들이 있었으나 그런 만큼 더 열심히 학교 현장을 방문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1년을 10년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자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