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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6.15 18:10:5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이성계는 왕위에 오를 때 수양대군처럼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다. 대신 '아랫사람'을 조종했다. 이때 아랫사람 역할을 한 인물이 배극렴(裵克廉·1325~1392)이다. 그는 고려 왕대비(공양왕 어머니)에게 대놓고 고려 사직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시중 배극렴이 왕대비에게 아뢰었다. "지금 왕이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이 부복하고 명령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事機)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하였다'.(태조실록)

이때 공양왕은 재위 3년째로 막 쉰살이 되는 나이였다. 그는 국새를 내놓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이내 울어 눈물이 두서너 줄기 흘러내리었다. 마침내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가니, 백관이 국새를 봉전하여 왕대비전에 두고(…) 13일(임진)에 대비가 교지를 선포하여 태조로 하여금 국사를 감록하게 하였다'.(태조실록)

공양왕은 폐위된 뒤 '공양군'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에서 살해됐다. 이로써 고려는 37대 475년만에 망했다. 조선이 개국됐다. 이성계는 창업, 즉 건국에 공이 많은 52명을 개국공신으로 선정했다. 1등 공신이 17명, 2등 공신, 24명, 3등 공신 11명이었다. 이중 1등 공신이면서 첫번째 명단에 오른 인물이 바로 배극렴이다.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요동 출병을 할 때 배극렴은 휘하 장교로 수행, 위화도 회군을 도왔다. 따라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성계와 배극렴 사이는 5.16 쿠데타의 박정희와 차지철 관계와 흡사한 면이 있다. 배극렴은 이같은 배경 때문에 조선의 초대 영의정, 즉 초대 총리에 오를 수 있었다. 막 개국한 나라의 2인자가 된 배극렴은 왕세작 책봉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누가 세자가 될 만한 사람인가"라고 물으니, (…)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배극렴이 말하기를, "막내 아들이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뜻을 결정하여 세자로 세웠다'.(태조실록) 이때의 '막내 아들'은 태조의 8번째 아들인 의안대군 이방석(1382~1398)을 일컫는다.

여기서 제 1차 왕자의 난이 싹텄고, 배극렴 자신도 왕자의 난을 주도한 이방원으로부터 사후 폄훼를 당하게 된다. 태조실록이 쓰여진 시기는 태종이 집권하던 때다. 사관이 작심을 하고 배극렴을 깎아내린다.

'배우지 못하여 학술이 없어서 임금에게 의견을 아뢴 것이 없었으며, 세자를 세우는 의논에 이르러서도 이에 임금의 뜻에 아첨하여 어린 서자를 세울 것을 청하고는 스스로 공(功)으로 삼으니, 식자(識者)들이 이를 탄식하였다. 졸(卒)하니 나이 68세였다'.

배극렴은 우리고장 인물이다. 그의 묘(도기념물 제 98호)는 증평군 송산리에 위치한다. 만년 거주지는 괴산 불정면 삼방리 어래산 아래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충주 주덕읍에도 똑같은 지명의 '어래산'과 '삼방리'가 있어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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