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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기록한 '청대학보' 50년 만에 새 빛

"학생의거로 민권 다시 찾다"
청대생 500명 시위 참여… 사진도 '생생'

  • 웹출고시간2010.04.15 19:29: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50년 만에 발견된 1960년 5월7일자 '청대학보'.

ⓒ 김태훈 기자
'학생의거는 쓰러져가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바로잡게 하고 말았다'. 빛바랜 누런 신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전국에 학생유혈 데모 - 19일, 본 대학생 500명도'라는 세로제목은 1면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학생의거로 민권 다시 찾다'라는 가로제목의 기사도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1960년 5월7일자 '청대학보(현 청대신문)' 38호에서였다.

박영수 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당시 학보 편집국장)이 4·19혁명에 참여했던 청주대 학생들의 시위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4·19혁명에 참여했던 청주대 학생들의 시위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청대학보'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량 분실된 지 50년 만이다. 당시 학보사 편집국장(국문과 4학년)이었던 박영수(72) 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은 최근 자택 다락방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38호 학보를 발견, 학교 측에 기증했다.

누렇게 변해버린 학보에는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갈망하는 500여 청주대 학생들의 피 맺힌 절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정문을 나서는 모습, 외덕교회(지금의 우암교회)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우암산으로 도주하는 학생들과 이를 잡으려는 무장경찰의 모습이 흑백사진 속의 역사로 기록됐다.

당시 청주대 학보사에는 4명의 기자가 있었는데 2명은 시위대에 합류했다. 펜과 수첩을 들고 정문을 나서는 박 이사장을 본 이정규(작고) 학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박 군! 뭘 하고 있는가. 빨리 가서 사진 찍지 않고".

학생과 교수, 모두가 뜻을 같이 한 것이다. "부정선거 책임자를 엄중 처단하고 학생들이 흘린 피에 보답하라"는 청주대 교수단의 성명서와 "초록빛 푸르른 4월이매 그대 싱그러운 불의를 못 참아 거룩한 죽음을 택했구나. 장할 손 민주조국 피 위에 솟은 꽃이여"라는 모기윤(작고) 국문과 교수의 4·19노래가 38호 학보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학생과 민족사' 특집면에는 광주학생항일운동부터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선도한 학생들의 이야기와 제2공화국 탄생을 알리는 논단이 실렸다.

당시 월간이었던 청대학보는 4월20일자로 발간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국관계로 부득이 발간치 못해 5월호로 미루어 발간하게 되었음을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고가 당시 어수선했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영수 이사장은 "청대학보는 60년대 대학신문 치고 굉장히 진보적이었다"며 "잊혀져갔던 청주대 학생들의 4·19역사가 다시 알려지게 돼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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