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딸아이가 준 커피 한 잔을, 운전하면서 차에다 두고 다 마시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깝지만 조금 남은 커피와 일회용 커피 컵을 버리려다가 컵 종이홀더에 쓰여 진 시를 보았습니다. 봄이 너에게... 이 환 천 벚꽃들도 피워주고 봄바람도 불어주고 분위기 다 잡아줘도 연애한번 못해보고 진짜 정말 이럴꺼냐 먹고 무심코 버려지는 종이 홀더에 봄이, 불안정한 청춘이 담겨있었습니다. 바쁘다고 계절이 오고가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내게 쉼표 같은 느낌이 드는 내용이었습니다. 버리려던 종이를 손에 들고 한참을 읽어보다가 문득 주위를 보니 벚꽃이 지고 형광빛 연두색 잎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 청춘들에게 이 시는 어떻게 읽혔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4포 세대'라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연애는 사치입니다. 무한 경쟁시대 열차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거든요. 경쟁사회에서 뒤쳐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보다 앞서나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끌어 내리기도 합니다. 잘하든 못하든 우선 끌어 내리고 보는 것입니다. 그때 주로 사용하는
"바르게 줄서서 다른데 보지 말고 앞을 보고 걸으세요." 라고 말해 놓고 아차 하고 나를 돌아본다.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걸까. 나는 또 딜레마에 빠진다. 다른 곳은 보지 말고 앞을 보고 걸으라니. 옆도 보고 뒤고 보면서 주변의 사물들에게 눈도 떼어주고 꽃들의 향기도 맡아보고 걸음을 멈추어 바람의 살결도 느껴봐야 하는 거 아닐까. 해마다 현장학습을 갈 때 면 일주일 전부터 줄을 서보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로서 안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가서 출발지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현장학습에 가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얻어올까도 고민을 하지만 그보다는 안전을 더 우려한다. 왜냐하면 정작 안전사고가 난다면 얻어오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무엇을 위해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유목민들은 떠나기 위해서 정착하고, 농경민들은 정착하기 위해 떠난다고 했던가. 현대인들은 어디를 가든 목적지를 정해 놓고 간다. 중간에 무엇이 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잠시 스치는 것 일뿐.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가장 안전하게…
우리 몸의 구성 성분 중에는 결체 조직이라는 것이 있다. 성상이 다른 구조물을 서로 결합하여 분리되지 않도록 체결하는 역할을 한다. 힘줄과 인대가 바로 인체의 대표적 결체조직에 속한다. 힘줄은 근육과 뼈를 연결하고, 인대는 뼈와 뼈를 연결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구조물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움직임을 허용하면서 근골격계 특히 관절 가동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서로 분리가 되지 못하게 하는 '안정성'과 맞닿은 두 조직에 일정 부분 움직임을 허용하는 힘줄과 인대의 '동력학적 물성'은 콜라겐 섬유소의 분자 수준에서의 배열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며, 오랜 기간 우리 인류가 움직이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체득(體得)한 진화론적 자연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결체조직의 특정 부분에 작은 외력이 누적되거나, 순간적이면서도 강력한 부하가 걸리게 되면 콜라겐 섬유소의 규칙적인 배열에 변화가 나타나고 결체조직으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하는 데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심한 경우 힘줄이나 인대의 파열이 발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구조·기능적으로 취약한 조직 주변이 부어오르고 주변 피부조직까지 붉은색을 띠며 통증과 압통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는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녹지, 공원 등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사유재산 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이듬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20년간 원래 목적대로 개발되지 않은 도시계획시설은 2020년 7월 1일을 기해 해제한다'는 규정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1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정부와 지자체의 미온적 대처, 열악한 지자체 재정상황 등으로 당장 1년 뒤면 도시숲은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으로 분류돼 소유주의 재산권 행사를 통해 개발되거나 사유지로 봉쇄될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는 도시공원 일몰제를 통해 개별 토지주의 재산권을 보호해줘야 하는 동시에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난개발 및 녹지 감소 등을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해있다. 2010년 착공한 4대강 작천보는 노후화로 그 기능을 잃어가던 보를 개비함으로써 농업용수 공급의 안정화와 홍수예방, 자전거도로 등의 편의시설 확충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강이 흘러 지류를 모으고 바다에 가까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2007년 필자는 삼성창원병원 재활의학과장으로 봉직 차 경남으로 이주했다. '전국
약 2년 전 추석 때의 일이다. 차례를 지내고 마당을 걷고 있는데 아침햇살이 서쪽의 오래된 부엌문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오른쪽에는 어릴 적 태엽을 감으며 놀던 괘종시계가 있었고 녹색 고무호스가 그 위에 걸쳐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부엌문 왼쪽에는 연노란 우비 두세 벌이 모서리에 걸려 있었고 그 앞의 조그만 수돗가에는 갈색의 고무 양동이와 파란 물뿌리개가 엎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밝게 빛나는 황토색 부엌문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널린 사물들이 시골의 번잡한 풍경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면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충주로 돌아와 아침에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확대해가며 보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속 물건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게 아니었다. 부엌 앞 수돗가는 부모님이 들에 나가기 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곳이자 해 질 녘 손발을 씻으며 마무리하는 공간이었고, 괘종시계가 마당을 향해 걸려있던 이유는 농사철에 바삐 움직이며 시간을 바로 확인하기 위해서, 호스가 괘종시계에 걸쳐 있었던 이유는 안에 물이 고이지 않
요즈음 헌법재판관 임명에 따른 논란으로 국회가 마비되고 야당은 장외투쟁으로 길거리로 나가서 시위를 하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쪽은 비난하고 한쪽은 감싸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데 국민들은 피곤하다. 헌법재판관은 모두 9인이며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9인 중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3인 임명해야 하고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장(長)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엄연한 법이 있는데 인사청문회가 채택되지 않은 재판관을 임명해서 이 사달이 난 것 이다. 과거 정권때부터 인사청문회를 통과 못해도 장관으로 임명하는 일은 종종 있어 왔지만 법을 다루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마저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못하고 임명한 것은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법을 다루는 재판관을 법에서 지정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 이를 거치지 않은 재판관이 우리나라법의 위헌성과 정당해산,탄핵권을 갖는다는 자체가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시정잡배들은 금방 한 약속도 깨버리고 마구잡이로 행동할 수도 있지만 헌법재판관이 법에 있는 청문회를 거치
지난 주말 벚꽃길 걷기에 다녀왔다. 벚꽃보고 왔으면 겨울옷은 들여보내도 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어넣었던 옷들을 세탁하여 넣었다 도로 꺼내기를 반복하게 된다. 올 봄도 영락 없이 성급히 집어넣은 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벚꽃으로 봄과 겨울을 구분하여 옷 정리를 한다. 겨울 외투를 정리를 하면서 늘 너무 많이 사들였다는 반성을 하지만 계절마다 반복되는 생각이고 언제나 똑같이 그 생각을 잊는다. 이러다 벌 받지 싶다가도 해마다 늘어나는 체중을 감당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고 있는 중이다. 한 계절을 보내며 세 번 이상 입지 않은 옷은 없어도 되는 것이란다.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으면서 버리지 못한 옷들로 옷장이 그득하다. 어떤 것은 비싼 것이라서 못 버리고 어떤 것은 귀한 사람이 선물한 것이라 버리지 못하고 어떤 것은 정이 들어서 버리지 못한다. 지난겨울에 30년 가까이 쓰고 다니던 베레모를 잃어버렸다. 내가 다녔던 길들을 되짚어 며칠을 찾아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털도 빠지고 종이처럼 얇아진 모자지만 제일 아끼고 많이 쓰고 다니던 것이기에 아직도 그 아쉬움을 잊지 못하겠다. 해마다 옷장에서 불려 나왔다 다시…
올해는 4.19혁명 59주년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학생들이 중심이 돼 정권교체를 이룬 일은 4.19혁명이 유일하다. 정부는 4.19당시 청주시를 비롯해 전국 5대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군의 무차별 공격에 맨주먹 맨손으로 저항하던 186명의 꽃다운 생명이 숨졌다. 6천400여 명이 다쳤다. 청주에서도 4월18일과 19일에 청주대학교를 비롯한 청주공고, 청주상고, 청주농고, 청주고, 세광고, 청주여고, 청주여자고등학교 등 수천 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고 외쳤다. 충북도청을 향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청주대학교 학도호국단 간부였던 김현수, 오세억, 박종희, 박상기 등 4학년과 권인식, 심만보 등 2학년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1960년 4월14일부터 수차례 비밀회의를 갖고 시위를 결의했다. 살포할 전단지를 프린트 하는 등 밤을 지새우며 준비했다. 마침내 4월19일 결의한대로 나섰다. 시위에 나선 대학생 500여명은 윗저고리 겉옷을 벗고 머리에 수건을 매고 열을 지어 질서 정연하게 나섰다.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선두에 서고 권인식, 심만보가 구호를 선창하면서 교문을 나왔다. 시민
남편은 보살사의 물이 좋다며 언제부턴가 생수를 떠오기 시작했다. 2주일 전 오랜만에 함께 물 뜨러 갔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 잠시 보살사 경내를 둘러보고 오니 우리뿐이다. 물통박스를 내리고 물을 받기 시작하는데 연세 지긋한 아저씨 한 분이 오셨다. 순서를 기다리며 남편이 물 받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허허 웃으시며 "요건 백산수팀, 저건 삼다수팀이네요." 하셨다. 표현이 재미있어 우리 집 물통 박스를 쳐다보니 하늘색과 흰색뚜껑 병들이 박스 두 개에 나뉘어져 있었다. 남편은 1.5L 병이 아홉 개 들어가는 박스 두 개에 물을 길어오는데 하나는 하늘색 뚜껑 백산수 물병들을 또 하나에는 흰색 뚜껑 삼다수 물병들을 넣어둔 것을 보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답다 생각하며 남편이 물을 채우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먼저 뚜껑을 다 열어 약수터용 파란색 국자에 넣어 두고 물병을 담은 채 박스만 살짝살짝 돌리며 물을 조금씩 받는다. 한 바퀴 다 돌려 아홉 개에 씻을 물을 다 받으면 물병 하나를 깨끗이 흔들어 씻은 후에 먹을 물을 채우기 시작하고 다 채울 동안 나머지 물병을 씻는다. 물을 받는 것도 물병을 들거나 하지 않
요술버선을 신어본 경험이 있는가· 아마 요술버선이 대체 뭐냐고 되묻는 분이 더 많을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할머니 버선', '할머니 덧신'으로 기억할만한 화려한 꽃무늬의 두툼한 버선이 그것이다. 나도 어릴 적 본 기억이 있는데, 화려한 몸빼바지에 더 화려한 요술버선까지 장착한 동네 할머니들이 경로당에 모여 만만치 않게 화려한 화투장을 들고 둘러앉아 계신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게는 추억의 물건인 요술버선이지만, 누구에게는 핫 아이템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난 2월 한국관광공사가 일본인 회원을 대상으로 '한국 재래시장에서 쇼핑하고 싶은 아이템'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요술버선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저렴하지만 따뜻하고 디자인도 다양해서 선물하기 좋다고 한다. 그 밖에도 스틱커피(봉지커피), 일바지(몸빼바지), 다시○과 같은 향미증진제 등도 높은 순위에 등극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왜 팔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제품들이 외국인들에겐 '대박' 상품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는 경북 영주의 한 대장간에서 생산된 4천원짜리 '호미'가 2만원도 넘는 가격에 팔리며 원예 관련 제품 판매 10위권 안
수십만년전부터 인류가 삶의 근거를 마련한 곳은 대부분 강변이었다. 강자갈을 떼어 연모를 만들어 쓰던 구석기부터 돌을 갈아 쓰던 신석기, 무기를 만들어 쓰던 청동기 유적들이 대부분 이런 강변에서 찾아진다. 충북의 달천, 남한강은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이었지만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전쟁터였다. 험준한 소백산은 자연히 삼국의 경계가 되어 쟁패지로 부상했다. 고대사 기록에 이 일대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5세기 중반 남하하는 고구려와 북상하는 신라가 충돌한 것은 바로 달천의 상류였다. 달천 상류인 괴산 청천(薩水)에서 백제세력을 몰아낸 고구려는 속리산을 넘어 상주까지 넘보게 된다. 남한강변 충주를 점령한 고구려 세력은 달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상주로 남하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제동맹(羅濟同盟)의 대응으로 상주 땅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웠다.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군이 남하했던 달천을 통해 국원성을 점령했을 가능성이 크다. 죽령이나 계립령보다는 달천 길이 용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천 주변은 고대사 유적의 보고를 이룬다. 충주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고구려비가 찾아진 곳이다. 만주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감안
낭성면 관정리는 자연지명인 관터와 머구미(먹우물)를 한자로 표기한 '관기(官基)'와 '묵정(墨井)'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머구미는 산으로 막힌 지형을 가리키는 '막은 뫼(산)'에서 변이된 것으로 추정되며 관터는 활미 옆에 있는 마을인데 백제 시대에 낭비성(娘臂城)의 고을터라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관터라는 지명은 '관청이 있던 터'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남일면 고은리의 '관터'는 고은 삼거리의 북쪽 국도변에 있는데 옛적에 관청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의 관터는 현(縣)의 현사(縣舍)가 있던 곳이라 한다. 그밖에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를 비롯하여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쌍수리,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충남 서산시 해미면 관유리, 충남 청양군 화성면 신정리, 경기도 아산시 둔포면 관대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경북 상주시 낙동면 유곡리,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전북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강원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등에 널리 퍼져 있는 '관터'의 유래도 관청이 있던 터라는 데는 다름이 없다. 또한 관터와 같은 의미와 유래를 지니고 있는 '관골'이라는 지명도 너무나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무심한 찌르레기 계절 끝에 울어 쌓고 갈 길 머다하는 상여꾼 조바심에 선소리가 구성지면 요령잡이 한 손엔 노자봉투 또 한 손엔 낭랑한 쇠 요령소리.가슴을 후벼파던 장례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수년. 엊그제 새 떼를 입히며 사초를 하였다. 이승에 지은 매듭 올마다 한 두시고 그예 떠나시던 정월 초하루! 해토머리 재촉하는 궂은비도 설운 데 순 돋는 뗏장을 다지는 심경이야 억장이 무너져라. 모여선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의 서로 엇갈린 주장 속에 봉분이 제 모양을 갖추고 제절을 다듬으니 그래도 모질게 춥던 장일의 그 을씨년스럽고 답답했던 마음이 봄눈처럼 녹아내리며 자질구레 얽혔던 마음의 사슬들이 풀린 것 같다. 진정 석관에 뉘인 시신이야 "좌청룡 우백호"인들 당신 뜻일 수 있으리까? 나 한 몸 살아가는 게 훨씬 더 바쁘고 소중해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편찮으시던 석 달 동안 몇 밤을 지켜드린 것 외엔 병든 육신을 위해 편안함과 기쁨을 드린 게 없다. 정성이니 효행이니 하기 쉬운 말들이 내겐 그리 어색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어 뒤늦은 회한의 눈물이 또 아스므레 앞을 가린다. 눈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핵가족화…
지나온 세월 내가 흘린 눈물을 생각해본다. 뛰어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을 때 흘리던 눈물과는 다른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만났던 눈물을 떠올린다. 어릴 적에 잃어버렸던 동생을 찾아 안고 우시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내 속에서 뜨겁게 솟구치던 눈물, 사랑하는 이들을 놓고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흘린 눈물이 그런 눈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엉뚱하게도 친구 딸 결혼식에서 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아름다운 음악가 신부와 멋있고 능력 있는 의사 신랑을 축복하는 남성 이중창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축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순간,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신부의 고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신랑이 장갑 낀 손을 들어 가만히 닦아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만 울어버렸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원앙이라고 흐뭇하던 마음이 애잔한 아픔에 닿은 것이다. 곱게 단장하고 신부 어머니 석에 앉아 있는 표정 없는 내 친구를 본다. 딸이 결혼한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어머니! 아기가 되어버린 어머니 대신 혼수는 물론 폐백 음식까지도 손수 준비한 딸아이의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볼 때마다 과연 성공할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성공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위기와 분단의 비극까지 끝내고 단군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다. 그 반대일 경우에는 적잖은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테고, 북핵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해야할 것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게 될 텐데 문 대통령은 지도력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왜 문 대통령은 아무런 안전대책도 강구하지 않고 몰빵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대북 문제가 잘못되더라도 경제나 외교에서 만회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도 강구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생이 불안하다는 사실이다. 경제가 살아나야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국력이 생기는데, 우리도 먹을 게 없는 처지에 어떻게 북한을 돕겠는가, 국내 사정이 이렇다면 주변 국가와의 관계라도 좋아야만 유사시 도움이라도 받을 게 아닌가. 우리는 주변 4강 중에서 어느 나라와도 관계가 좋지 않다. 만약 문 대통령이 비핵화에 실패한데다 민생불만까지 폭발하면 주변국이 돕는 게 아니라 반길 것이
"역경이 사람한테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구나!" 셰익스피어가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노래한 이 대목은 우리를 명상으로 이끈다. 시련은 사람을 단련시키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려움을 이긴 사람이 갖추게 되는 덕목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겠다. 역경을 맞이할 때 배려심과 삶에 관한 깊은 사랑이 진정 우리의 마음에 스며드는 지를 살펴볼 일이다. 커피가 그렇다. 향미가 화려한 커피가 관심을 끌게 하지만, 우수함을 견주는 마지막 순간에는 깨끗하면서도 입에 오래 맴도는 잔잔한 면모를 지닌 커피를 이기지 못한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것은 주변과 어울리기 힘든 탓이다. 최고의 커피가 지녀야 할 가치는 '어울림',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감'이다. 커피를 두고 둘러 앉아 향미를 이야기하며 행복을 나누는 '공감하는 기쁨(Sympathetic joy)'이 커피가 인류에게 선사하는 최상의 선물이다. 커피는 생각할수록 사람과 같다. 씨앗에서 한 잔에 담기기까지(Seed to Cup) 정성을 다한 커피는 고매한 인격을 마주한 것만큼이나 감성을 훈훈하게 해준다. 어느 한 구석 모난 곳 없이 은은하게 다가오는 향기와 매만지는 듯…
4월 23일은 '책 드림 날'이자 '세계책의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정부가 '책 드림 날'로 정했다. 책 드림은 영어 Dream에서 따 온 것으로 책을 통해 꿈과 소망 희망을 찾는다. 라는 의미를 함축, 그런 뜻에서 정했다.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1995년 세계적인 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인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0월 11일을 '독서의 날'로 '9월을 독서의 달'로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정하여 책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데카르트가 독서의 중요함을 강조했으며 스티브잡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책'이라 했다. 몽테뉴는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프랑스 작가 샤를만치는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고 했다. 그는 또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라고 했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모가 유아기에 책을 읽어주는 것 일상화돼 있다. 유대인들은 수 천 년 전부터 매일
지금부터 450년 전인 1569년 음력 3월 4일 따뜻한 봄날에 퇴계 선생은 69세의 연세로 벼슬에서 은퇴하여 마지막 800리 귀향길에 오르셨습니다. 곁에 두고 멘토로 삼고 싶었던 선조임금도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강한 귀향의지를 존중하여 귀향길을 허락하셨습니다. 경복궁을 나서 동호 몽뢰정에서 1박을 하고 배를 타고 봉은사에 도착하실 때 조정의 동료와 한강변에 운집한 백성들도 아쉽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께서 어떤 마음으로 귀향하셨는지 되새겨보는 재현행사가 지난 4월 9일 서울 봉은사를 출발하여 도산서원까지 11박 12일간 대장정으로 엊그제(21일)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도산서원 원장(김병일)이 재현단장을 맡아 24명의 실무진행 팀과 참여자 23명(유학자, 선비수련원, 도산서원 참 공부모임)으로 의관을 갖춘 선비복장을 하고 걸으면서 참여했습니다. 행사 날짜도 450년 전 귀향길에 맞추어 봄 향기 짙은 남한강 옆 강변길을 봄꽃들이 어우러진 충주, 청풍, 단양을 거쳐 죽령 옛길을 선생께서 이동하신 노정(路程)에 최대한 접근하여 이동하였습니다. 4월 9일 오후 2시 봉은사 보우당에서 개회식에 이어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의 의미라는 주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는 삶의 지침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무소유가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못합니다. 어렴풋이 그림은 떠오르는데 단정 지어서 대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산도 가족도 뒤로 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사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나의 재산을 자꾸만 덜어내어 단출해지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또 아무런 소유물 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다니는 나그네 같은 삶을 그릴 수도 있을 겁니다. 생각에 따라 다양해집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물질적으로 점점 가난해지는 삶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현대인에게 부담스런 삶'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소유'를 동경하면서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삶'이라며 등을 돌리고 맙니다. 그리곤 항변합니다. '삶은 경쟁이잖아. 이 경쟁시대의 소유욕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욕망이 없다면 결국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지 않겠어' '무소유는 도인이나 성자의 일이지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과연 그럴까요. 요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자면 많이 가진 사람은 자칫 큰 코 다치기 쉽습니다. 나는 절대 투기하지 않았고 노력해서 벌었다고 항변하지만 양파껍질처럼 벗겨보면 썩은 속살이 보입니다. 정직하
모처럼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모임에 가려는 참인데 어깨 부분이 약간 틀어져 보인다. 지난 겨울에 만든 원피스로, 꿰맬 때부터 아물려지지 않아 속 썩이던 부위가 막상 입으려니 또 그렇게 어색하다. 평소 옷을 고쳐 입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 왔다. 재단이며 바느질도 쉽게 했건만 이음매가 어렵다. 다른 부위는 그냥 드르륵 박으면 되는데 어깨와 팔꿈치 부분은 재단할 때부터 까다로웠다. 마땅치 않아 뜯고 고치다 보니 뜻밖에 오래 걸렸다. 일례로 메이커 옷은 대부분 원단이 좋고 디자인이 예쁜 줄 알고 있다. 하기야 그런 면도 없지는 않으나 어깨선과 허리의 연결 부분이 매끄러워 입기가 편하다. 적절한 이음매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표방한다. 우리 보는 풍경만 해도 어우러지지 않고 겉돌면 삭막할 뿐이다. 흐르는 물줄기와 울멍줄멍한 산세의 경계가 자로 잰 듯 뚜렷하면 참으로 어색할 것이다. 언제 냇물로 강물로 합쳐졌는지 모를 정도의 유연성이 아니면 우리 늘 보는 풍경이 나오기는 힘들다. 엊그제 친정을 다녀오면서 본 달래강도 그랬다. 물 오른 버드나무가 물에 푹 잠겼는데 치렁치렁 늘어진 가지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찰박이는 물소리에 뒤섞여 달천강 합수머리가…
금년으로부터 450년 전인 1569년 음력 3월 4일에 69세의 퇴계선생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왕 선조로부터 귀향 허가를 받아냈다. 도산서원에서는 겨레의 참 스승이신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이 땅에서 스러져 가는 정신문화를 다시 세우고자 귀향길 재현행사를 개최하였다. 예전 귀향과 똑같은 일정으로 음력 3월 4일부터 17일 즉, 양력으로는 2019년 4월 9일부터 21일까지 장장 11박 12일 간 800리 길을 걷는 여정이다.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장안의 명사들이 분분이 한강변에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선생을 전송했다. 작별의 마당에 시를 빼 놓을 수는 없는 법이라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등 기라성같이 운집한 선비들 모두 솜씨를 뽐내어 한 수씩 읊어 드렸다. 이 가운데 으뜸으로 뽑혔으며 선생도 당신의 소회를 잘 읽었다 여긴 작품은 고담(孤潭)의 시(詩)이다.漢江送退溪先生(한강송퇴계선생-한강에서 퇴계 선생을 전송하며) 고담 이순인(李純仁:1543~1592) 한강물 유유히 밤낮없이 흐르는데(江水悠悠日夜流)외로운 돛단배는 길손 위해 머물러 주지를 않누나(孤帆不爲客行留)고향 산 가까
해가 바뀌어 나는 열네 살이 되었다. 한 살을 더 먹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일력을 찢어 새날을 여는 일도, 가득 찬 요강을 비우는 일도 여전히 내 일이었다. 하나 보드레한 일력을 찢을 때마다 손이 곱았고 곱은 손만큼 마음이 시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 점점 다가왔기 때문이다. 방학 중인데도 하릴없이 학교에 갔다. 찬바람이 웽웽 부는 운동장을 맥없이 돌다 심심하면 애먼 돌멩이를 툭툭 차며 긴 하루를 보냈다. 행여 병태 꼭뒤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어느 날은 그 애 집이 있는 한약방 골목길을 잔바람에 일렁이는 그네처럼 바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 방학이 끝나가도록 병태를 만날 수 없었다. 그 애를 처음 본 것은 세 해 전이었다. 학기 중간에 전학 온 나는 새 학교가 낯설었고 매사가 어설펐다. 그중에서도 짧은 시간 내 으슥한 변소에 다녀오는 일은 늘 아슬아슬하고 무서웠다. 그날도 변소에 가려고 긴 복도를 재바르게 걷다가 7반 교실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애를 보았다. 힐끔 쳐다보다 그만 눈이 마주쳤다. 여물지 않은 가슴께가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자주 맞닥뜨렸다. 그렇다 보니 말 한 번 나눈 적 없는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자기까지 하루가 참 짧다. 긴 인생에 있어 하루는 정말 점과 같은데, 그 점들이 모여서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입체적인 내 인생이 된다. 늘 울타리에서 살다 보니 그 울타리를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다. 자유를 꿈꾼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해서 또는 자유가 그립기 때문에 그렇게 오매불망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유를 꿈꿀 때, 나에게 찾아온 한 문장이 있었다. 올해 3월 1일자 충북도교육청 조직개편 사전 설명회에서 들은 한 문장이었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다" 변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잘 정리해 주는 한마디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문장이 실린 책은 1883년 지금의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출생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인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익숙한 것은 참 편하고 좋다. 그게 나에게 독이 될지라도 익숙한 것은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 준다. 마약처럼 내 삶의 가장 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와서 조금씩 조금씩 병들게 한다. 그렇게 나는 익숙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에게 낯선 것은 악이고, 익숙한 것은 선이 됐다. 낯선 것은 두렵고, 왠지 정답이 아닐 것 같고, 잘못 된…
따스한 봄날과 함께 학교에는 새 학기가 시작됐다.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학교폭력 또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학생, 학부모들의 걱정도 늘어나고 있다. 학교폭력의 추세는 점점 다양해지고 흉악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언어폭력으로 시작해 폭행·협박·고문·따돌림·성폭력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특정인을 괴롭히는 행동으로 SNS, 카카오톡을 통해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등의 신종 학교폭력이 등장했다. 단체 대화방에 특정 학생을 초대해 단체로 욕설을 하거나 그 학생만 남겨두고 단체로 나가버리는 행위, 단체대화방에서 나가도 끊임없이 초대해 괴롭히는 이른바 '카톡감옥' 등 메신저로 괴롭히는 방법과 스마트폰 핫스팟 기능을 이용해 피해학생의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빼앗아 금전적으로 피해를 주는 'wifi 셔틀' 등 최근에는 물리적인 폭력행사보다는 상대방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주는 정신적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학교폭력은 학교 내에서뿐 아니라 방과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2차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단순히 장난이라고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텃밭에 이른 봄볕이 가득하다. 푸석해진 흙을 한 삽 가득 떠서 뒤집었다. 상큼한 흙냄새와 함께 밝은 햇살아래 드러난 것은 진갈색 흙속의 하얀 풀뿌리들이었다. 봄의 시작이 그곳에 있었다. 겉으로는 지난 가을에 말라비틀어진 고갱이들 밖에 보이지 않지만 땅속으로는 연노랑 줄기와 새잎을 밀어 올릴 준비가 끝나 있었다. 저렇게 가느다란 실뿌리들로 인해 텃밭 가득 피어날 온갖 풀과 꽃들을 상상하니 봄이 코앞에 어른거렸다. 올봄은 그렇게 텃밭을 파 엎으며 만났다. 옛날 친구네 텃밭에서 무 구덩이를 파며 캐냈던 그 봄처럼…. 중학교 1학년 때 사귀었던 그 친구에게는 죄를 지은 것 같은 아픈 기억이 나의 가슴 한편에 얹혀있다. 그와는 쌍둥이 형제마냥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번갈아 가며 친구 집에 들락거리며 무엇이든 똑같이 나누려고 했고, 늘 함께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오해와 다툼이 있었고 그 후 서먹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걸 되돌리지 못하고 아주 헤어지고 말았다. 세월이 지난 후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은 그렇게 똑똑하고 정이 많았던 친구가 청년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이었다.
[충북일보] 오는 30일 본보와 충북리더스클럽이 주최하는 '14회 충북경제단체 친선골프대회'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그랜드 컨트리클럽(그랜드 CC)에서 열린다. 대회는 경제인들의 친목 도모와 상호 간의 다양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대회는 도내 경제단체 회원과 재경 경제인 등 160여 명이 40개 팀을 이뤄 신페리오 방식으로 치룬다. 라운딩 이후 시상식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초청 만찬, 행운권 추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시상식은 △메달리스트 △우승(남·여) △준우승(남·여) △니어리스트(남·여) △롱게스트(남·여)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부상이 각각 주어진다. 가장 멋지게 옷을 입은 참가자인 △베스트드레스상(남·여) 수상자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가칭 '충북아트센터'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중앙투자 심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2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되며 용역을 통해 세운 기본계획에는 공연장 등 규모, 운영 방안, 경제성 검토 등이 담긴다. 도는 이 계획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충북아트센터 건립에는 총 2천300억 원이 소요된다. 연구원은 내년 4월까지 경제성과 재무성, 정책적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같은 해 상반기 행안부에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면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오는 2026년 첫 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도는 이런 절차가 차질 없이
[충북일보] "산업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라 조용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경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재진(67) ㈜ATS(에이티에스) 대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TS는 국내 자동차 플라스틱부품 업계 1위 기업으로 2004년 설립해 20년간 끊임 없이 달려왔다. 주력 제품은 초정밀 사출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용 클립(Clip)과 패스너(Fastener)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이다. 이재진 대표는 "클립, 패스너 등 플라스틱 부품과 연료 부품 분야로 두 가지 트랙을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다"며 "보통 300가지 정도의 부품이 매월 생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티에스는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2곳이 필요로 하는 부품 점유율의 50%를 넘어섰다. H사의 1대에 사용되는 내장·외장용 클립 100개중 50개 이상은 에이티에스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진 대표는 "신차 개발은 2년을 앞두고 이뤄진다. 올해 기준으로 2026년 모델링이 나오면 그에 필요한 부품을 부품 회사들이 2~3년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의 디자인 등에 맞춘 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