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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8.18 19:32:1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옛길엔 그리움이 널려있다. 조선 소나무 우거진 옛길을 걷노라면 어디선가 옛 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오래된 바람이 머물다 간 숲속에선 잡초처럼 끈끈히 목숨을 이어간 민초들의 체취가 바람결에 밀려오고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가지에는 태고의 전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계절을 이어 달리며 피고 지는 옛길엔 알싸한 향수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고속도로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 기능면에서 그 효용가치를 잃은 옛길은 방치되거나 자꾸 사라져가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옛길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더 증폭되고 있다. 아마도 옛길은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리라. 소백산맥이 충북과 영남을 가른 까닭에 우리고장에는 옛길이 많다. 영남에서 한양을 가려면 필히 충북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옛길이 단양의 죽령(竹嶺), 연풍과 문경을 잇는 조령(鳥嶺), 충주시 미륵리사지 위쪽의 하늘 재, 영동의 추풍령(秋風嶺)과 괘방령(掛榜嶺) 등이다.

관리들은 물론,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도, 부평초처럼 사방대처를 떠도는 보부상이나 소몰이꾼도 이 길을 넘나들며 삶을 이어갔다.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들은 가급적 추풍령이나 죽령을 피해갔다. 이 고개를 넘으면 과거시험에서 추풍낙엽이 되거나 죽을 쑨다고 해서 합격의 기운이 서린 괘방령이나 조령을 택했다.

경북에서 충주 미륵리 사지로 통하는 하늘 재는 가장 먼저 개척된 충북의 고개다. 계립령(鷄立嶺)이라고도 불리는 하늘 재는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열린 길이다. 이 고개를 두고 신라와 고구려의 다툼이 잦았다. 남진과 북진이 맞물린 루트였기 때문이다. 온달장군은 출사표에서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일 정도였다. 통일신라가 망한 후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이 길을 넘어왔다는 애잔한 전설도 전해진다. 현재 이 길은 1.5km정도의 옛길이 남아 있다.

충북과 영남을 잇는 대표적인 옛길은 흔히 '문경새재'라고 불리는 조령이다. 충북에 산재한 여러 고개 중 통행량이 가장 많았던 고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옛길을 둘러싼 문화자산이나 상권의 거의가 문경 쪽에 밀집되어 있다. 충북 쪽에는 펜션과 음식점이 여러 곳 있으나 문경 쪽에 비하면 미미하다. 옛길의 보존상태도 문경 쪽이 뛰어나다. 문경 쪽으로는 1관문에서 3관문까지 도로포장을 안 하고 옛 정취를 잘 살렸는데 충북 쪽으로는 도로포장을 하여 옛 맛을 잃었다. 태조 왕건 영화세트 등 관광 인프라도 문경 쪽에 몰려있다.

상당현(上黨縣), 낭자곡성(娘子谷城), 서원경(西原京) 등으로 불린 고도 청주에도 여러 곳에 옛길이 있다. 죽령이나 조령 정도의 큰 고개는 아니지만 상당산성에 이르는 옛 길이 숲 속에 숨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옛길이 명암지에서 상봉재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에는 길옆으로 병마절도사 송덕비 10여기가 사열을 하고 있다. 상당산성에 기거하던 병마절도사의 공덕을 기리는 비이다. 이 비는 여타 비문과 달리 자연 암벽에 돋을새김(부조)형식으로 비문을 새겼다는 점이 특징이다. 10여기의 비문이 풍파에 닳아 판독이 가능한 것은 병사 전문현(田文顯) 송덕비 정도다. 나머지는 비문 일부만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이 길은 우마차의 교행이 가능할 정도의 국도였으나 지금은 오솔길 정도에 그친다. 그마저도 온전히 보존치 못하고 명암지~산성 간 도로 개설도 옛 길의 절반이상이 없어져 아쉬움을 더해 준다. 개발의 논리 앞에 보존의 논리는 여전히 맥을 못 춘다. 남아 있는 절반의 길이라도 잘 보존했으면 한다. 용암동에서 월오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소미재'라는 옛길이 있었다. 동막골 나무꾼들의 쉴참이기도 했던 이 고개도 도로포장으로 옛 맛이 없어졌다. 청주 월오동에서 청원 황청리로 통하는 '미테재'는 청주 일대에서 남은 마지막 옛길인데 이곳도 역시 도로개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청원 황청리에서 고갯마루까지는 벌써 불도저가 삼켜버렸다. 미구에 나머지 구간도 없어질 것이다. 고갯마루에 있는 서낭당이 외로워 보인다. 청주삼백리 답사대에서 허물어진 서낭당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보부상이나 소몰이꾼들은 넘던 길에서 소원을 청취하고 길손을 안내하던 돌탑이 굴삭기를 흘겨본다. 신설도로가 옛길을 범하지 않고 돌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옛길의 고즈넉함과 낭만을 만끽하도록 절반의 길만이라도 보존했으면 한다. 개발과 보존을 상치되는 개념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으며 양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상생의 전략이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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