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09.07.28 16:47: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청주 중앙공원에 여름이 내려앉는다. 매미가 여름 한 자락을 찢어내기라도 할 듯 요란하게 울어 젖힌다. 여름 물난리에 이색 선생을 구했다는 수령 800년 된 은행나무와 충청병영의 영욕을 간직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훌륭한 햇빛 차단제가 된다. 그 시원한 나무그늘, 역사의 그늘을 찾아 수많은 노인들이 이곳을 찾아 든다. 청주는 물론 청원지역에서도 상당수의 노인이 중앙공원을 즐겨 찾는다. 외로움에 지치고 경제난에 찌든 노인들은 이곳에서 동년배와 어울리며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는다. 사회봉사단체가 심심찮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니 주머니를 절약할 수도 있다.

중앙공원은 어느새 노인공원이 됐다. 노인공원이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중앙공원의 모습이 겉과 속이 다른 이상한 형태로 진화하여 그 오랜 역사성에 흠집을 내고 있기 때문에 속이 상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여느 공원과 다름없이 삶의 이야기가 무륵 익는 휴식의 공간이지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삶의 그림자와 얼룩이 짙게 배어 있다.

중앙공원에서는 계절도 없이 윷놀이 판이 벌어진다. 윷놀이는 통상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지던 풍습이나 이렇다 할 여가문화를 갖지 못한 노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곳에서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느티나무 그늘에선 고 스톱 판이 매일 벌어진다. 윷놀이와 고스 톱 판은 한두 판이 아니다. 적을 때는 10여개 판, 많을 때는 20여개 판이 중앙공원을 꽉 메우다시피 한다. 간혹 타자들이 나타나 노인들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훑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술 취한 노인 분들 몇몇이 싸구려 카세트에서 요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막춤을 추어대기도 한다. 간간이 꽃뱀도 출몰하며 노인들을 유혹한다.

지난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중앙공원을 찾아 우리고장의 문화재를 설명하다 매우 민망해졌다. 카세트의 소음으로 문화재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아이들의 눈은 자꾸 윷놀이나 고 스톱 판으로 향했다. 중앙공원 북쪽에 위치한 망선루(望仙樓)는 충북도 유형문화재로 청주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건축물이다. 당초에는 구 청주경찰서 무덕관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가 헐어버렸다. 당시 애국지사 김태희 씨가 주선을 하여 이 건물을 제일교회에 옮겨지었고 근래에 청주시에서 원래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이곳으로 다시 옮겼다.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파천하던 고려 공민왕은 한 때 청주에 머물며 망선루(당시에는 취경루)에서 과거시험을 보이고 합격자의 방을 이곳에다 써 붙였다. 그래서 망선루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애용되고 있으나 몇몇의 노인 분들은 출입제한 금줄을 넘어 망선루 마루아래 빈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에서 화투판을 벌이기도 한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꽃뱀의 출몰이다. 공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인이 접근했다. 새들새들한 모습의 그 여인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반말 투로 " 놀러 갈랴· "하고 마음을 떠 봤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알고 보니 유혹의 목소리였다. 이제 나이 겨우 60 문턱인데 내가 그렇게 늙어보였나 말이다. 아마도 나이에 비해 지름길로 달려온 백발 때문이리라...내가 아무 대꾸도 안하자 그 여인은 옆자리에 앉은 70대 노인에게 같은 말을 건넸다. 그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런 매매춘 행위 때문에 중앙공원을 찾는 노인 중 여러 명이 성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이를 금지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공원 내에서 윤락행위, 취주행패, 소란행위 강력단속'이라는 플래카드가 청주시청, 경찰서, 보건소 이름으로 걸려 있고 서쪽 편에는 '불건전한 윷놀이 화투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러나 이런 플래카드 사이로 꽃뱀은 여전히 출몰하고 윷놀이, 고 스톱 판은 끊일 줄 모른다. 마치 플래카드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단속도 단속이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노인 건전 놀이문화의 개발과 보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술래잡기 식 단속은 1회용 처방에 그치고 만다. 대상이 노인분들이고 보니 강력한 단속에도 한계와 애로가 있을 것이다.

노인 분들도 자정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전국 어딜 가보아도 역사 공원에서 이런 일탈행위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 청주 중앙공원은 충청병마절도사가 기거하던 충청병영의 옛터다. 조선 효종 때 충남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영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일제시대에 수많은 객사건물이 헐렸지만 아직도 충청병마절도사영문, 망선루, 조헌선생과 영규대사의 기적비 , 척화비 등 수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 있다. 이러한 청주 역사문화의 1번지가 윷놀이와 고 스톱과 윤락행위로 얼룩저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