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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7.25 17:41: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벽초 홍명희(1888-1968).

불후의 대하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의 저자인 벽초가 정작 그의 고향인 충북 괴산군에서는 아직도 외면당하고 있다.

벽초는 문학인이자 독립운동가다.

11살 무렵에 중국의 고전소설을 읽고 일본 다이세이 중학 유학시절에는 ‘한인수재’로 화제를 모았는가 하면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당대 ‘조선 3재’로 불렸다.

조선이 1910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당시 금산군수에 재직하고 있던 부친 홍범식(1871-1910)은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했고 벽초는 이를 평생 잊지 않고 살았다.

부친 순국 후 국외에서 한동안 방랑생활을 했던 벽초는 귀국 후 고향서 3․1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1년간 옥고를 치렀고 교육계와 언론계에 몸담아 사회활동에 전념했다.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반일통일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민족운동가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또 신간회운동에 분주하던 1928년 11월부터 조선일보에 역사소설 ‘임꺽정’을 연재, 한국민족문학 최고봉이란 극찬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측대표로 참석했다가 북에 남아 북한정부 수립 후 부수상을 지냈다.

벽초의 이 같은 행적 때문에 고향에 남았던 일가는 고초를 당했고 그 뒤 보훈단체의 반발 등으로 괴산 지역에서는 한동안 벽초의 이름은 금기의 대상이었다.

3․1만세시위운동의 주역이었지만 괴산읍에 세워진 만세운동기념비에는 일정 기간 그의 이름은 빠졌다.

또 조선후기 중부지역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벽초 생가는 1984년 문화재 지정이 취소됐다가 2002년 12월 ‘일완 홍범식 고택’이란 명칭으로 충북도민속자료 14호로 재지정됐다.

1998년에는 제월대에 세운 ‘벽초 홍명희 문학비’에 대한 보훈단체 반발로 벽초의 행적을 적은 동판이 철거되는 진통 끝에 2000년 10월 일부 문구를 수정해 다시 부착됐다.

지난해에는 괴산군이 ‘벽초 (신인)문학상’ 제정을 추진했으나 보훈단체의 반발로 군의회에서 관련예산 2500만원 전액이 삭감됐고 괴산문화원이 올 ‘홍명희문학제’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보훈단체의 요구 사항이 문학제의 취지에 맞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

벽초는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좌.우 이념 논쟁으로 그가 설 자리는 여전히 좁기만 하다.

기사제공:뉴시스(http://ww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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