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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영

보은읍 이평리

나는 결혼 4년차에 아이 둘을 둔 내 아내의 남편이자 아빠이다. 신혼 초 아이를 갖기 전에는 모든 관심사가 둘만의 일상이었다. 직장에서 괴롭히는 상사는 없는지, 밥은 먹었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무슨 선물을 해 줄지…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아내에게 이렇게 묻는다. "큰애는 유치원에서 별일 없었어·" "작은 녀석은 우유 잘 먹고 아픈 데는 좀 낳았고·" 그리고 나선 저녁을 먹고 시간이 되면 애들하고 산책하고 들어와 목욕시키고 바로 재운다.

그 어디에도 내 아내의 자리는 없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애들 교육 문제, 집안의 사소한 일 등으로 잦은 언쟁도 늘고 서로에게 조금만 잘못해도 짜증이 먼저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아내와 내가 '이웃사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집에 사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 하 듯 한 집안에서 살면서 담을 쌓고 따로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원인이 뭘까·" 생각해 봤다. 그렇게 좋아서 결혼했는데 이제는 서로 '소 닭 보듯' 하니 나름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첫 애를 출산할 때 분만실에서 꼬막 8시간을 함께하고 마지막 순간 탯줄까지 자르며 태어난 애보다 긴 시간의 고통을 참아내고 그래도 환하게 웃어 주었던 아내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올해 1월 둘째가 태어났다. 처음부터 산부인과 의사가 둘째는 첫째보다 쉽게 나온다고 안심을 시켜줘서 그런지 큰 무리 없이 둘째를 낳았다.

이제 큰애는 미운 3살 되었고 7개월이 다 되어 가는 둘째는 기어 다닐 준비를 하는지 뒤집어 바닥에서 슈퍼맨 자세를 온몸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한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녀석들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온 신경이 애들한테 가 있어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아빠로서 나는, 그리고 엄마로서 아내는 아이들 문제가 곧 우리 인생의 전부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직은 어리지만 언젠가는 녀석들도 독립하여 우리 곁을 떠나 제 삶을 살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다 큰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느끼는 우울증을 '빈집 증후군'이란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애들 엄마로서의 아내가 아니라 내 평생 배우자인 아내로 다시 한번 그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인생이란 긴 항해에서 나중에는 나와 아내 둘만 남아 나머지 남은 항로를 가야한다.

가족은 중요하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더욱 중요하다. 그들의 좋은 관계가 가족의 평화를 부른다.

오늘부터 한 지붕 '이웃사촌'을 몰아내고 '아내'를 찾기 위한 작은 실천을 하기로 했다. 퇴근이나 전화를 하면 아내가 밥을 잘 챙겨 먹었는지, 또 하루는 잘 보냈는지 먼저 물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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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