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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7.02.20 09:23:4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요즘 TV에서 시청률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아닌가 싶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의 고대사를 재조명한 사극에 시청자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전쟁 장면에 대한 호기심도 다분히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처럼 수많은 외침과 내전 등 전쟁사로 점철돼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절하고 비극적인 전쟁이라면 단연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내 지역은 내가 지킨다는 일념으로 공비와 대항해 싸운 향토방위군(鄕土防衛軍)의 활약상 연구에 30년이나 몰두, 한국전쟁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저술 작업을 하고 있는 한 향토사학자가 있다.
괴산군의회 초대 군의원을 지낸 김사진(59.괴산군 청천면 청천리61-3)씨가 청천면 도명산 등을 근거지로 한 공비와 맞서 싸운 향토방위군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1977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향토방위군으로 참전했다가 순국한 참전용사들의 위령탑을 청천에 세우면서부터다.
김씨는 “그때 나는 그 자리에서 생전 처음 방위용사라는 말을 들었고, 군번도 없이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신 분이 우리 지역에 많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정식 군인도 아니면서 전투에 참여해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향토방위군에 관심을 둔 김씨는 지난 88년 3월 창립한 괴산향토사연구회에 가입하면서부터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자료 수집에 나섰다.
김씨는 이듬해 청천향토방위군 관련 문서를 대량 발견했고, 이를 처음으로 향토지에 발표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이후에도 당시 방위군으로 참전했던 당사자와 유족들을 만나 관련사진이나 문서 등 수많은 자료와 증언을 수집했다. 방위군이 직접 기록한 행사와 감찰일지는 방위군의 운영과 전투 상황을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김씨는 이처럼 자료와 증언 수집 과정에서 위령탑과 참전비에 새겨진 전사자와 참전용사의 명단 일부가 잘못됐음을 발견했고, 현재 전사자 32명, 참전용사 402명의 명단을 확인하고 그들의 인적사항과 활약상을 일일이 정리해 오는 5월 중 책으로 엮을 계획여서 군사편찬위원회 등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향토방위군 청천면 중대장 정영근 방위중위는 당시 41세로 방위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경찰에서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된 주민 수백명을 소환.조사하려 하자 이를 완강히 거절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해 지금도 주민들은 그의 공덕을 잊지 않고 있다.
삼송 중대장 박형순 방위소위는 천석군의 아들로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99칸 자신의 집을 방위군 본부 사무실로 사용했고, 방위군을 이끌면서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빨치산에 붙잡혀 사지를 찢기는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소대장 한상열 방위소위는 모친상을 당한 중대장을 대신해 선임소대장으로 참전했다가 10대의 어린 대원 2명과 함께 적에게 붙잡혔는데, 대원들을 살려내고 자신은 빨치산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김씨는 “많은 관련자가 나에게 자료를 건네고 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호국영령들께서 주신 책무로 생각된다”며 “당시 15세의 어린 청소년에서 40대의 장년에 이르는 400여명의 방위군 활약은 공비들의 약탈과 만행으로부터 고향을 지켜 내겠다는 애향정신이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 위령탑을 성지로 가꿔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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