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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의 행간에는 흑백논리가 적지않게 부침하고 있다. 흑백사이의 회색 공간은 아주 작고, 그 공간에서 우물쭈물 대다가는 '회색분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완충지대인 연골을 잃고 등뼈가 마주치는 디스크 환자를 양산해 냈다. 역사를 보는 눈은 다양해야 하고 흑백논리로부터 다소 자유스러워야 한다. '흥부 놀부전' '콩쥐 팥쥐전' 등에서 보듯 우리의 민담, 설화조차도 선악의 대결 구도를 취하는 예가 흔히 존재한다.

고구려가 수도를 집안(集安)에서 평양으로 옮긴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고 한반도의 남쪽을 지키려던 서진남수(西進南守) 정책에서 서쪽을 지키고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서수남진(西守南進)정책에 기인한 것이지만 속사정은 집안에 근거를 둔 호족의 발호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무려 5 백 년 동안이나 집안에 뿌리를 둔 호족의 무리는 때때로 왕권을 위협했던 것이다. 고구려의 멸망 원인은 대막리지에 오른 연개소문의 독재와 그의 아들 남생, 남산 간의 불화에 있다고 알려져 왔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데 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일반적으로 방탕한 왕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백제의 멸망원인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3천 궁녀와 놀아난 의자왕의 황음과 무능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의자왕은 영민한 군주로 효행과 형제애가 돈독하여 사람들로부터 해동증자(海東曾子)라는 칭호를 얻었다. 뿐만아니라 의자왕은 신라의 변방을 공격하여 40개의 성(城)을 빼앗았다. 나중에 성충, 흥수 등 충신의 말은 듣지 않았어도 그 자체가 백제의 패망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백제의 패망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왜적을 무찌른 성웅이고 원균은 졸장부로 묘사되고 있으나 원균 역시 열심히 싸워 공신에 책봉되었다. 다만 원균의 지략이 이순신에 미치지 못한데다 이순신을 부각시키려 들다보니 상대적으로 원균의 전공이 낮게 평가된 것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관계는 누가 더 뛰어난 장수였느냐는 상대평가에 있는 것이지 선과 악의 대결 구도는 절대 아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경우도 그렇다. 인현왕후는 선의 대명사요, 장희빈은 악의 대명사로 각인되나 그처럼 흑백논리로 재단할 성질이 아니다. 인현왕후의 성품이 어진데 비해 장희빈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것이다. 장희빈에게 죄가 있다면 인현왕후를 시기하고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것 밖에 없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규탄을 받을 성질은 되나 사약을 받을만한 죄는 아니었다. 장희빈은 사랑싸움의 제물이자 붕당의 희생물이었다. 세상인심은 콩죽끓듯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싸움이 한창일 때 항간에서는 인현왕후를 동정하는 노래가 나돌았다.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 장다리는 장희빈을, 미나리는 인현왕후 민씨를 빗댄 것이다.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민심 앞에,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마녀사냥 식 여론재판 앞에 장희빈은 독배를 들고 최후를 마쳤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시대상을 반영한 60년대의 기념 비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광장과 밀실 사이를 두고 번민을 거듭한다. 남쪽에는 밀실은 있되 광장이 없고, 북쪽에는 광장은 있되 밀실이 없다. 전쟁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던 이명준은 남과 북 어느 곳도 택하지 않고 제3국행 선박에 오른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선박에서 이명준은 푸른 바도에 몸을 던진다. 바다는 그가 평소에 그리던 밀실과 광장을 다 갖춘 최후의 피난처였던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인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 근대 정치사에서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이 불행한 행로를 겪었지만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 대통령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을 비롯하여 가족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컸겠지만 꼭 그런 방법을 택했어야 했나 하는 점에선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이 비극은 본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흑백논리에 중독된 사회풍토와 완벽주의, 무결점주의를 지향하는 탄력성 없는 사회인식이 전 대통령을 벼랑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보다도 훨씬 많이 부정한 짓을 한 사람도 멀쩡한데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부엉이 바위처럼 딱딱한 물성보다 김해의 푸른 바다같은 넉넉한 마음을 가졌더라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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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