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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래를 대표하는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수도 없이 존재한다. 긴 아리랑을 비롯하여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가장 많이 불러지고 있다. 이외에도 수 백 종을 헤아리는 노랫말의 변종까지 합치면 우리나라의 아리랑은 수천 곡에 이른다. 게다가 아리랑 곡조를 골격으로 하는 요즘의 창작곡까지 합치면 그 숫자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우리나라가 아리랑의 천국임에도 국토의 중심부에 있는 충북에 아리랑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어찌 아리랑이 없었을까. 아리랑 역시 민초의 애환을 담은 농요일진대 충북에서 실종된 것일까, 아니면 애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해답은 의외로 충북인의 이민사에서 찾아졌다. 1938년, 만척주식회사는 충북에 사람을 파견하여 이주민을 모집하였다. 일제의 침탈에 멀미가 난 사람들은 조밥이라도 실컷 먹어볼까 해서 정든 고향을 떠났다. '북간도의 감자는 물동이만 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도 나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 180세대가 만주로 향했는데 대개 청주, 청원, 보은, 옥천 사람들이었다. 이중 왕청현 대흥구로 1백 세대가 가고, 80세대는 두만강에서 20여리 떨어진 양수진 정암촌에 정착하였다. 이민대열은 산 설고 물 설은 이국 만리에 와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황무지를 일궜다. 초가 굴뚝으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곳은 충청도 어느 마을과 마찬가지였다. 국제화 현대화의 격랑 속에서도 초침(秒針)이 정지되어 있는 그곳에 1993년, 충북대 임동철 총장(당시는 국어국문과 교수)이 찾아들었다. 반가운 고향 손님을 맞은 정암촌은 금세 축제의 열기로 물들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옥천이 고향이라는 김 노인은 고향의 노래로 이민의 설움과 망향의 한을 달랬다. " 세천(細川) 땅 세모진 나무에/ 당사실로 그네를 매어/ 임이 뛸 적 내가 밀고/ 내가 뛸 적 임이 밀고/ 여보 당사 줄 밀지마소/ 줄 끊어지면 정 떨어지리/ 줄이야 끊어질 망정/ 우리 연분이 떨어질소냐..."

김 노인의 구슬픈 가락은 산자락을 타고 두만강변으로 울려 퍼졌다. 망향의 설움과 분단의 아픔이 북소리와 노랫가락을 타고 나가다 정자바위(정암)에 부딪쳐 되돌아 왔다. 이처럼 충청도 이민들은 봇짐을 쌓을 때 유형의 생활도구만을 챙긴 것이 아니라 고향의 노래와 아리랑, 심청전, 춘향전 등 겨레의 얼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이민의 봇짐에서 기적처럼 '청주 아리랑'이 나온 것이다. 연변 김봉관 씨가 바로 '청주 아리랑'을 채보하였고 임 총장이 이 사실을 확인하였다. 청주 토박이 조차도 까맣게 잊은 '청주 아리랑'이 근 7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울 너머 담 너머 임 숨겨 두고/ 난들난들 호박잎이 날 속였네/ 시어머니 죽으면 좋다더니/ 왕골자리 떨어지니 또 생각난다/ 달라랑 달라랑 갑사댕기/ 본때도 안 묻어서 사주가 왔네/ 사주랑 받아서 무릎에 놓고/ 한숨만 쉬어도 동남풍 분다/ 시아버지 골난 데는 술 받아주고/ 시어머니 골난 데는 이 잡아준다/ 새애끼가 골난 데는 엿 사다주고/ 며늘애기 골난 데는 홍두깨 찜질/ 아리랑 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밥푸다 말구서 엉덩춤 춘다..."

'청주 아리랑'의 발견은 분명 청주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큰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청주사람들의 민요가 거의 잊혀지고 강원도 정선지방의 민요에 동화될 무렵, 만주에서는 청주의 얼을 지키고 있었다. 이 역시 메나리조로 정선 아리랑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가사, 음정에는 청주의 체취가 물씬 묻어난다. '청주 아리랑의 보존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암촌 동포들의 삶과 애환을 다른 '청주 아리랑 축제'가 지난 2월 24일 열렸다. 식민지 시대에 이민을 떠나는 민초들의 애환을 음악극 형태로 재구성했다. '청주아리랑'의 보존은 두 가지 방향에서 모색되었으면 한다.

첫 번째는 '청주 아리랑' 가락과 가사를 그대로 보존하는 일이며 두 번째는 현대 음악의 리듬감각에 맞게 재 편곡하여 청주사람들의 노래로 삼았으면 한다. 무슨 운동 경기가 벌어지는 곳에서 충북은 이렇다 할 응원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노래의 생명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자꾸 불러지는 데 달려있다. 청주사람들의 영원한 향수, '청주 아리랑'을 보급해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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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