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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

충북적십자혈액원 원장

20년 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어느 토요일 오후 충북혈액원 당직실에 전화가 울렸다. 대형사고가 나 다량의 혈액을 구한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유하고 있는 혈액으로는 부족했다. AB형 혈액 혈소판 30Unit가 필요했다.

일단 인근 군부대에 헌혈 협조를 구했다. '나머지 혈액은 어떻게 구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순간 TV가 보였다. 마침 미스코리아 선발 방송을 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방송국에 자막안내를 부탁했다.

'과연 방송을 보고 몇 명이나 헌혈을 하러 올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당직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너도 나도 헌혈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무려 50명이 넘는 헌혈자원자가 혈액원을 찾아왔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사람은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뉴스를 보면 사건사고로 얼룩진 세상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다.

행동하는 다수의 양심들이 세상을 훈훈하게 한다. 사랑은 동사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전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119를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한 남자가 욕탕에서 아이를 안고 후다닥 튀어 나왔다. '탕에 빠졌나·, 뜨거운 물에 데었나·' 모두들 술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욕탕 바닥에 버려진 면도날에 발바닥을 베인 것이다.

여기 저기 피를 뚝뚝 흘리는 아이를 안고 이 남자는 발가벗은 채 허둥지둥 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큰 위험은 없습니다"

나는 남자를 안심시킨 뒤 일단 수건으로 지혈을 하였다. 그런 뒤 "염려하지 말고 옷 입고 천천히 병원으로 가라"고 말해줬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여분의 혈액을 비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출혈이 있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차분하게 상태를 파악하고 응급처치를 한 다음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하면 된다.

이것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발가벗고 뛰느냐 침착하게 지혈을 하느냐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속마음은 또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는가·

잉여혈(남는 혈액) 중 일부를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하여 나누어 주는 것이 헌혈이다.

헌혈을 하면 조혈기능이 강화돼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낮아진다는 연구논문도 있다.

피는 살아있는 세포다. 그렇기 때문에 헌혈을 한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헌혈을 사랑의 실천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피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따가움을 참고 헌혈을 한다면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행위가 된다.

지난해 생명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에 참가한 충북도민은 8만4천951명이었다.

인구비례로 보면 전국 4.84% 대비 충북 5.72%로 전국에서 가장 참여율이 높았다.

인정이 넘쳐흐르는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인들은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도 으뜸임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 태어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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