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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재작년 초가을이었던 같다. 학교를 한 바퀴 돌고 현관의 아이들 신발장을 봤다. 가지런히 놓인 실내화 중에 흰색 하나와 군청색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흰색 실내화는 안쪽 옆면이 갈라져 있었고 군청색은 라벨이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새 실내화를 살 때까지 불편하게 끌고 다닐 것 같아 임시라도 꿰매주고 싶었다. 라벨은 지금 붙여주지 않으면 떨어져나가 잃어버릴 것 같았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 없이 들고 와서 교장실에서 수리했다. 하나는 분홍색 실로 무늬를 만들며 꿰매어 주었고 하나는 접착제를 발라 꾹 눌러서 붙였다.

퇴근 무렵 신발을 갖다 놓으려고 내려가니 돌봄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신발을 받아들었다. 1학년 석민이가 신발이 없어져서 실내화를 신고 집에 갔다는 것이다. 군청색은 실내화가 아니었단다. 신발장에 둔 신발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설마 교장이 가져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테니 말이다. 온 학교를 뒤졌을 돌봄 선생님과 신발을 잃어버린 줄 알고 놀랐을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다음 날 아침 등교하는 석민이에게 신발을 건네며 어제 말도 없이 가져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교장 선생님, 괜찮아요. 붙여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씩 웃으며 교실로 뛰어가 버렸다.

석민이는 청주에서 살다가 우리 학교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다. 처음 얼마간 적응할 땐 좀 힘들어하더니 그 후론 관기를 가장 사랑하는 학생이 되었다. 친구들과 맘껏 뛰놀며 언제나 밝고 활기차게 학교생활을 한다. 관기가 너무 좋아 백만 년 동안 다니고 싶단다. 절대 관기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아이의 말에 부모님도 마음을 정해 관기에 남았고 이제 곧 3학년이 된다.

며칠 전 석민 엄마가 아이의 운동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이야기하셨다. 새로 산 운동화 한 짝에는 네임펜으로 '김귀숙 교장 선생님', 또 한 짝에는 '관기초 짱 좋아'라고 써 놓았더란다. 자기 이름도 아니고 교장의 이름을 커다랗게 써놓은 것을 봤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석민아, 새로 산 운동화에 왜 교장 선생님 이름을 썼어?"라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단다.

"내가 좋아하니까 썼지. 왜?"

이 이야기를 듣는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입술을 꽉 다물고 나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켜 내쉬었다. 어느 사랑 고백이 이처럼 감동적일까? 어떤 값비싼 선물이 이보다 기쁠까? 석민이는 그 일을 기억한 것일까?

곧 학교를 떠난다. 1월 초 종업식 때 아이들에게 미리 인사를 했다. 너희들과 같이 훌륭한 학생들과 4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 추억으로 행복할 거라고 말했다. 교실로 돌아가 펑펑 운 아이들도 있다지만 아이들 마음에 나에 대해 특별한 무언가 깊이 남기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금방 잊을테니까.

교장으로서 나는 교직원들과 한마음으로 길을 걸으며 우리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침반이고 싶었다. 든든한 지원자로 그저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학교는 4년간 변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많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학교 숲에 알찬 교육과정과 교직원들의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떠날 시간이 됐다. 그동안 이곳에서 너무나 즐거웠고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함께 행복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한데 어린 석민이가 내 사랑과 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아 더없이 기쁘다.

운동화에 새긴 내 이름이 현관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상상을 해본다. 석민이가 학교 곳곳을 뛰어다닐 때 나도 따라 다니겠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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