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 문화재 된다

도, 유형문화재 지정 예고
석봉 한호 필적·허균 시문 등 수록
자료적 가치·예술성 뛰어나

  • 웹출고시간2021.07.11 14:13:12
  • 최종수정2021.07.11 14:13:12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 중 경수도첩.

ⓒ 충북도
[충북일보] 고령신씨 영성군파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淸州 高靈申氏 名家墨蹟)'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충북도에 따르면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은 청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고령신씨 영성군파 문중에서 전해온 묵적(墨蹟)이다. 묵적은 그림과 글씨를 모아 만든 서화첩을 말한다.

경수도첩(석봉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 중 경수도첩. 경수도첩에는 조선시대 명필로 이름을 떨친 석봉 한호의 필체도 담겨 있다.

ⓒ 충북도
묵적에는 △신숙주의 4세손인 신중엄(申仲淹, 1522∼1604년)의 팔순 잔치에 그의 아들 신식(申湜, 1551∼1623년)·신설(申渫, 1561∼1631년) 형제가 손님을 초대하거나 따로 시를 받아 묶은 '경수도첩(慶壽圖帖)' △신식·신설 형제의 관력(官歷)과 관련된 '연경별장(燕京別章)', '관동별장(關東別章)', '해서별장(海西別章)' 등 3점 △경수도첩에 누락된 글을 포함해 당대 인사들과 주고받은 '만력간독첩(萬曆簡牘帖)' △신설의 현손 신택(1662∼1729년)이 허목(許穆, 1595∼1682년)에게 받은 좌우명을 적은 '미수서적(眉·書蹟)' 등 총 6점이다.

도는 당대의 명필로 유명한 석봉 한호(韓濩, 1543~1605년), 미수 허목(許穆 , 1595~1682년) 등의 필적, 백사 이항복, 지봉 이수광, 한음 이덕형, 어우 유몽인, 허균 등 당대 유명인사들의 시문과 윤의립(尹毅立, 1568~1643년)의 그림으로 전하는 산수도 등이 포함돼 있어 예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 6점.

ⓒ 충북도
당대의 주요 인물들의 시문을 집성해 당시의 문화와 풍습, 사회상을 증명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기록자료이자 청주를 대표하는 세거성씨(여러 대에 걸쳐 계속 살아오고 있는 성씨)의 중요유물로서 자료적인 가치 및 예술성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편, 청주 고령신씨 문중과 관련된 △청주 백석정(문화재자료 82호)△청주 신중엄 신도비(유형문화재 161호) △청주 묵정영당(유형문화재 108호) △신숙주 초상(보물 613호)도 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청주 고령신씨 명가묵적은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각계의 의렴을 수렴·검토하고, 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안혜주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