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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박사 꿈' 이뤘어요"

청주 하명애씨, 20일 교원대서 학위 취득

  • 웹출고시간2009.02.18 18:08:0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대학 졸업후 20년만에 박사학위를 받는 하명애 씨가 자신의 논문집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느 주부들처럼 가정에서 살림만 할 수도 있던 한 여성이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20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특히 이 주부의 박사학위 취득은 자기 자신은 물론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서도 막상 도전하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오는 20일 한국교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하명애(43·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씨는 지난 1989년 고려대에서 남편 변호승(충북대 교수)씨와 함께 학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수인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지난 1999년 영어교육학(TESOL) 석사학위를 취득한 하씨는 청주로 이사한 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하게 됐다.

서른 중반을 넘긴 두 아이의 엄마가 박사과정을 진학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씨는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거웠고 그러다보니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환경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며 "망설일 때가 차라리 선택할 수 있는 때이고 더 늦어지면 선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진학을 결심했다"고 진학과정을 소개했다.

하씨는 2004년 결국 한국교원대학교 영어교육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했으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과 대학강사로서의 역할, 박사과정 학생으로서의 역할 등 1인 3역을 해야 했던 하씨는 잠을 줄이며 공부를 계속했다.

살림과 공부를 병행하며 힘든 생활을 5년간이나 계속한 하씨는 논문을 쓰면서 몸무게가 5kg이나 줄어들어 공부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짐작하게 하고 있다.

오는 20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영어교사 심화연수가 교사의 전문성 신장 및 교수 행동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하씨는 "오래 전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킨 것이 가장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족들의 도움이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하씨는 "그동안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도 비쳤다.

10년마다 학위를 취득한 하씨는 "지완이와 유완이 두 딸은 물론 꿈을 갖고 있는 시민들에게 삶의 여러 과정에서 도전의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며 "강단에서 지식 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도 항상 전하는 선생이 되겠다"고 앞으로의 소망을 알렸다.

서른 끝자락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불혹을 넘겨 소중한 결실을 얻은 그녀의 밝은 미소를 통해 도전하는 삶이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다.

/ 김규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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