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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천에서는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정체성 확립에 관한 논쟁이 기관장 급 사이에 심심찮게 일고 있다. 살기 좋은 고장을 의미하는 생거진천은 오래 전 부터 진천의 표제어가 되었는데 도대체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가에 대한 지리적, 고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생거진천에 대한 유래를 설화에만 의존하는 데는 뭔가 한계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진천에 사는 한 여인이 개가를 하여 용인과 진천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두 아들의 효심이 모두 넘쳐 서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다투었다. 이 문제가 송사로 이어지자 진천현감은 고민 끝에 '살아서는 진천에 모시도록하고(生居鎭川) 죽어서는 용인에 모시도록 하라(死去龍仁)'는 명 판결을 내렸다는 얘기다.

전설이외에도 생거진천의 유래는 지리적, 고고학적 고찰을 통해 포괄적으로 드러난 진천의 성격과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선 지리적으로 볼 때 내륙 깊숙이 위치한 진천은 풍 수해 등 자연 재앙이 적었다. 해발 100m 안팎의 노령화된 구릉지대는 삶의 쾌적한 조건을 마련해주었고 소백, 차령산맥을 굽이 돈 실오라기 미호천은 기름진 땅을 일궈 풍족한 농경문화를 생성했다.

택리지는 진천을 일컬어 '기름진 땅과 온화한 기후'라고 적었다. 생거진천의 유래를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생거진천의 유래가 역사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그만치 4만 년 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중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근의 송두리 유적은 미호천 변에 잘 발달된 중기구석기 시대의 한데(야외)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대패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20 여 점의 사냥돌이 관심을 모았다. 한 유적에서 2~3개 정도 출토되는 사냥돌이 이곳에서는 무더기로 나왔다. 구릉지대에서 수렵행위가 활발했다는 물증이다. 장관리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선사유적이 발굴조사되었다. 미호천 주변에는 선사유적이 꽤 많은데 그 북방한계선은 진천에 있다.

석기시대를 마감하고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도 진천은 토기 문화와 철기문화의 꼭지 점에 섰다. 진천 산수리, 삼룡리 백제가마터는 일찍이 미호천 변에서 질그릇을 구워가며 살아갔던 진천사람들의 발달된 농경문화를 유추케 한다. 1986년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원삼국초기~4세기에 이르는 19기의 가마터가 나타났다. 야산의 경사진 면을 이용하여 조성한 가마에서 고운 태토를 재료로 하여 두드림무늬 토기(타날문 토기), 공모양 토기(구형토기), 목 짧은 항아리, 속 깊은 심발형 토기 등 여러 모양의 질그릇을 빚어 농경생활에 사용하였다. 출토 토기는 3~5세기 유적인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 출토 토기와 많이 닮아 진천~청주 간 토기문화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불러일으킨다.

진천 석장리는 한반도 고대제철의 메카다. 국립청주박물관에 의해 1994~1997년에 발굴 조사된 석장리 제철유적은 고대 제철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3~5세기에 조성된 석장리 제철유적은 원형, 장방형, 방형 등으로 모두 36기에 이른다. 이곳에서 철광석을 녹여 쇠를 만들고 그것으로 창, 칼 무기류와 농기구를 생산하였던 것이다.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전은 쇠붙이의 생산과 깊은 함수관계를 갖는다. 삼국이 충북을 서로 차지하려 혈전을 벌인 이유 중의 하나가 철광석 확보에 있었다. 철기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지배자로 등장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진천은 석기시대~원삼국 시대~철기 시대를 아우르며 한반도 문명의 새 지평을 연 곳이다.

비옥한 땅에서는 해마다 오곡백과가 무륵 익는다. 황금들판 진천 벌 기름진 땅에서 재배되는 진천 쌀은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다. 오늘날 이를 브랜드화 하여 진천은 '생거진천 쌀'이라는 명품을 내놓았다. 곡식이 옹골차게 영글고 사람 마음 씀씀이가 산수리, 삼룡리 가마터에서 구워낸 바리형 토기처럼 넉넉하니 '생거진천'이라는 찬사가 괜히 나온 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물질문명에다 균형 잡힌 정신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며 진천을 더욱 빛냈다. 일찍이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의 무혼(武魂)이 빛나는가 하면 송강 정철의 문학 혼은 진천사람들의 정신문화를 살찌웠다. 독립운동가 신팔균, 이상설 선생은 충절의 고장 진천의 맥을 이어갔다. 미호천 변 기름진 땅은 물질문명과 더불어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일궈나갔던 것이다. '생거진천'은 이러한 역사적 복합성 아래 배태(胚胎)된 진천의 상징어다. 좀 더 정확한 유래를 밝혀보려면 고고학적, 지리적 접근을 가능케 하는 관련학술회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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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