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09.02.10 19:21:3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화석으로 굳은 천년의 잠/ 동녘 새 빛으로 깨우려 해도/ 설움의 이불 너무 두꺼워/ 새벽 꿈 조차 빼앗겼다/ 고려 강아지(高麗犬) 동무 삼아/ 지신(地神) 달래던 청주의 꿈도/ 무심천 물소리 맞춰 어깨 스치던 정인(情人)의 숨소리도/ 상당의 별빛으로 남아/ 역사의 미로를 맴돌았다/ 일제가 압수했던 조선 무지개 옛터에 다시 띄우니/ 육중하던 돌다리 그 오랜 침묵 깨고/ 부활의 몸짓으로 청주의 시나위를 연주한다/ 가얏고를 퉁겨라, 새납을 불어라/ 달 그림자 밟으며 충청도 허튼 춤 밤새워 춘들 어떠랴/ 개꼬리 열 두발 상모 돌아가던 그 다리 위에서"

청주 육거리 재래시장 간선도로를 따라 묻힌 이 천년의 돌다리 남석교(南石橋)의 발굴 복원을 바라며 써본 필자의 졸작 시이다. 박혁거세 즉위 원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남석교는 직지심체요절, 청주읍성, 용두사지철당간, 상당산성 등과 더불어 역사도시 청주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청주의 대표적 문화재다.

남석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자 가장 규모가 큰 돌다리이다. 1923년 일인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가 쓴 청주연혁지에는 남석교가 한(漢)나라 선제(宣帝) 오봉원년(五鳳元年)에 건립했다고 적고 있다. 이는 BC 57년, 즉 박혁거세 즉위원년에 해당하는 것이다. 충남 청양의 조충현(趙忠顯)은 하주당시고(荷珠堂詩稿)에서 '오봉원년'이라는 기명(記銘)이 팔분예서체로 새겨져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다리 네 귀퉁이를 장식한 고려견상 등 전체적인 축조기법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 건립한 것이라면 천년의 돌다리요, 신라초기에 건립한 것이라면 이천년의 돌다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돌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남석교 뿐이다.

길이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이다. 그동안 남석교의 길이는 64m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004년 청주대 김태영 교수가 다시 실측한 결과 80.85m로 나타났다. 종전에는 한양대 앞의 살곶이 다리가 길이 70m로 가장 긴 돌다리였는데 2004년 조사결과 남석교가 그 기록을 갈아치우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로 밝혀졌다. T자 형의 교각 위에 청판돌을 두 줄로 깔아 만들었다. 너비는 약 3m정도로 우마차의 교행이 가능했다.

지금까지 남석교 사진은 총 6장이 전한다. 일인 세키도 다다스(關野貞)등이 찍은 남석교 사진에는 양산을 쓴 여인들, 갓을 쓰고 지나가는 행인, 아이들의 노는 모습 등이 담겨져 있고 다리건너 우암산과 육거리 시장 가게가 뚜렷하다. 일제초기에도 존재했던 이 다리는 무심천 물길이 바뀌면서 도시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일인들이 땅속에 묻었다. 일제는 1911년, 청주읍성을 헐어 하수구를 쌓더니 급기야 1932년에는 남석교까지 매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남석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호서읍지 등 고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충청도읍지에는 "정조 18년에 남인인 청주목사 안정탁(安廷鐸)이 남석교를 다시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고 낭성지에는 "경종 3년에 청주목사 최상정(崔尙鼎) 떠내려간 남석교를 다시 옛 모습대로 세웠다"고 적고 있다.

고문헌에는 무심천을 대교천(大橋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대교(大橋)란 즉, 남석교를 일컬음이다. 조선환여승람에는 서원팔경을 언급하고 있는데 팔경 중의 하나가 석교석구(石橋石拘)로 다리 네 귀퉁이에 있던 고려견을 일컬음이다. 고려견은 남석교의 매몰과 더불어 동공원으로 옮겨졌다가 이중 한 쌍은 다시 청주대 경내에 있는 용암사에 보관되어 있고 다른 한 쌍 중 1기는 충북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다른 1기는 행방불명되었다.

남석교의 복원과 더불어 고려견 또한 제자리를 찾아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남석교가 땅 속에 묻힌 지 77년이 되었어도 남석교 복원은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육거리 시장사람들의 반대가 심한데다 발굴복원에 따른 예산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남석교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고 발굴조사를 하여 원형을 찾으려면 줄잡아 1천억 원은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발굴복원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남석교가 아주 파괴된 것이 아니라 유구(遺構)가 땅 속에 그대로 있으므로 발굴조사를 한다면 옛 모습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남석교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돌다리인데 그 위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던 남석교 다리밟기도 강능 하평다리밟기, 안양 만안 다리밟기, 수원 다리밟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다리밟기였다. 그저께 청주문화원과 청주청년회의소가 공동으로 육거리 시장 입구에서 남석교 다리밟기를 벌였는데 모형이 아닌 실물이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