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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 년 새해, 설날의 뒤를 이어 정월대보름이 며칠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세시풍속으로 보면 설날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나 쥐불놀이, 달맞이, 다리 밟기 등 민속 행사는 정월 대보름에 집중적으로 펼쳐졌다. 설날의 분위기는 대보름까지 이어지며 한 해의 안녕과 희망의 소지(燒紙)를 올렸던 것이다.

비교적 마당이 넓었던 필자의 고향집에선 어김없이 마당 굿이 펼쳐졌다. 걸립패는 마당, 부엌, 장광, 우물가를 번갈아 돌며 지신을 밟았다. 굿거리 장단으로 천천히 운을 뗀 농악대는 차츰 중모리, 중중모리로 빨라지기 시작했고 휘몰이를 몰아칠 때는 농악대나 구경꾼 모두가 한데 어울려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할머니는 뒤주를 긁어 한 두말 가량의 쌀을 내놓았고 고사떡과 막걸리를 대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대문에 액막이를 한다며 엄나무를 걸어 두었고 청솔가지를 지붕위에 던져 노래기의 서식을 막았다. 할머니는 고사떡을 준비하여 떡 시루를 들고 마을 앞 냇가로 나가 용왕님께 자손 잘 되기를 빌었다. "슬하자손 상남 자손 굽어 살피시고 앉아서 천리, 서서 만리를 볼 수 있는 슬기를 주옵소서..."

할머니는 손이 발이 되도록 용왕님께 비는데 동네의 악동들은 냇둑에 포복을 하여 기회를 엿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고사떡을 시루 째 탈취하였다. 이 사실을 할머니께 고해 받치자 할머니는 태연하게 "고사떡은 나누어 먹는 거란다"하시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연날리기와 쥐불놀이에 흠뻑 빠졌다. 연을 잘 날리려면 우선 연을 잘 만들어야 했다. 대나무 우산살을 깎아 연의 뼈대를 만들고 한지를 재단하여 풀칠을 했다. 방패연을 만들 때는 밥사발이나 국사발을 엎어놓고 연의 이마에 원을 그린다음 태극무늬로 한껏 멋을 냈다. 둑방은 연날리기의 경연장이다. 높새바람과 마파람이 교대로 부는 그곳에서 연은 창공으로 치솟았고 연줄 끊어먹기에서 패배한 연은 얼레를 떠나 산 너머로 사라졌다. 더러는 전선이나 대추나무에 걸리기도 했다. '빚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 듯 했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연을 잃은 꼬맹이들은 울먹였으나 워낙 액막이 연이므로 멀리 날아갈수록 좋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달랬다.

짧은 겨울해가 지기 무섭게 냇가와 빈들에서는 쥐불놀이가 장관을 이뤘다. 쥐불은 깡통에 구멍을 뚫은 다음 삭정이나 광 솔을 넣어 지폈다. 일단 불이 붙은 쥐불은 빙글빙글 돌리는 원심력에 탄력을 받아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어스름 녘의 들판은 원무의 축제를 연출해냈다. 하늘의 둥근 달은 냇가에 반사되며 달빛을 쏟아놓았고 수십, 수백의 쥐불도 한데 엉키어 오륜기를 수도 없이 빚어냈다. 그 많은 달빛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정월 대보름 놀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석전(石戰)에 있다.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던 사람들도 이 날만큼은 용사로 변하였다. 내(川)를 사이에 두고 돌팔매질로 승부를 가렸다. 나는 골목대장 경석이가 시키는 대로 냇 돌을 잘게 쪼아 호주머니가 불룩하도록 주어 담았다. 실탄을 장전한 셈이다. 돌팔매질은 동네 청년과 조무래기들이 도맡았다. 머슴애들이 석전에 동원되는 동안, 계집아이들은 담벼락에 붙어 키득키득 웃으며 어느 편이 이기는가를 지켜보았다. 이마가 터지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우리 동네는 힘에 밀려 후퇴하였는데 원수(元帥)를 자처하며 별 다섯 개를 단 경석이는 패배의 책임을 물어 조무래기들의 계급장을 모조리 떼어 버렸다.

졸지에 백의종군으로 전락한 조무래기들은 엉엉 울었다. 열심히 싸웠는데...경석이는 아이들이 안됐는지 한데 모아놓고 조건부 사면령을 내렸다. 마을을 돌며 밥이나 떡 등 먹을거리를 훔쳐오면 계급을 원상복구 시켜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아이들은 이웃집 부엌에 잠입하여 오곡밥, 묵나물, 고사 떡 등을 훔쳐왔다. 발이 빠른 종식이는 어느 집 부뚜막에 놓아 둔 막걸리를 한 사발 훔쳐왔는데 촛불 아래서 확인해 보니 막걸 리가 아닌 구정물이었다.

대보름 전날, 할머니는 들기름 종지에다 목화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식구 불을 밝혔다. 기름을 잔뜩 먹은 목화 심지는 새벽까지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꼬박꼬박 졸며 밤을 지새웠는데 내가 조는 사이에 당숙 아저씨는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놓았다. 풍년농사와 건각(健脚)을 빌던 정월대보름의 정취는 산업화 도시화의 틈새 속에서 실종되었다. 때마침 시민안녕과 건각을 다지는 남석교 다리 밟기가 정월대보름인 오는 9일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 청주문화원, 청주청년회의소 주최로 열린다고 하니 이곳에서 잃어버린 향수의 조각이라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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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