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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이

충북청소년상담지원센터 위기지원팀장

퇴근 준비를 하는 도중에 1388전화가 울렸다. 당직자의 전화상담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 위기지원팀원들은 모두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한국청소년상담원 사이버 게시판에 충북의 군 지역에 사는 학생이 자살과 관련한 글을 올렸으니 즉시 확인을 요한다는 내용이라고 전해줬다.

게시판에 올라온 아이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가 꺼져 있어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일단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 필요했다.

게시판에 있는 대략적인 주소로 가까스로 집 전화번호를 알게 돼 아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긴박한 사무실 분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아이의 목소리는 침착하면서도 또렷했다. 절로 '휴~' 하는 안도감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음 날, 일찌감치 가정을 방문해 아이와 어머니를 한명씩 전담해 면접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남편과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지만 가정불화가 자녀들에게 끼쳤을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평소 성격이 활달하고 친구관계가 좋은 편이라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를 만큼 아이는 내색하지 않은 채 혼자 힘들어 했던 것이다.

아이는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됐는데 이후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반복적으로 그 장면이 떠오르고 생각이 진행되더니 결국 죽이는 사람이 본인이 되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동생이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는 "왜 하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을 죽이는 장면이 떠오르는 건지 알 수 없다"며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고, 이러한 생각이 너무 끔찍해 괴로워 울면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에는 모든 글에 대해서 비밀보장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기 마련인데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상할까 하는 우려에 조심스레 물어봤다. "처음 집으로 상담자가 전화 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놀랍게도 아이는 "이제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 고마웠다"고 했다. 무언가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면접 후, 수년전부터 반복되어온 부모님들의 싸움과 심한 언어폭력, 경제적 어려움이 겹친 복합적인 문제에 결국 가족 모두가 지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 가족처럼 화를 내는 방식이 폭발적이면서 가족의 상호비난이 계속된다면 아이가 좋아지기는 매우 힘들다. 이렇듯 가족 때문에 청소년이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드러난 문제를 계기로 부부불화 및 잘못된 양육방식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없이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다행히 아이는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하며, 힘든 상황에서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이 대상자의 큰 장점이며 자원이다. 성인상담과는 달리 청소년상담은 한명의 대상자를 돕기 위해서 지역의 많은 자원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함을 느낀다. 이 사례 초기 개입 시에도 학교 당직교사, 아파트 경비실, 읍사무소, 지구대의 신속한 도움이 있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상담을 위해 충북청소년상담지원센터 찾아가는 상담 '청소년 동반자' 선생님들의 큰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기막힌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모두가 돌아설 때, 믿음과 사랑으로 너그러이 기다려주시는 부모님, 그들을 통해 상담자인 내가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 모든 문제가 상담을 통해서만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책의 한 구절처럼 '누군가의 사랑,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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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이종구 충북개발공사 본부장

[충북일보] 이종구 충북개발공사 본부장은 "앞으로 충북개발공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ESG 경영에 앞장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ESG 경영은 환경보호(Environment)·사회공헌(Social)·윤리경영(Governance)의 약자로, 환경보호에 앞장서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과 법·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경영 활동을 말한다. 이 본부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개발공사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공익성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며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더라도 저발전지역에 더 투자를 한다거나 공사 수익의 일정 금액을 사회로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이 본부장은 사회적기금 조성을 예로 들었다. 공사가 추진하는 사업들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충북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기탁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여기에 공사의 주요 사업인 산업단지 조성 사업의 경우도 도내에서 비교적 낙후된 단양이나 보은, 옥천, 영동 등에 조성함으로 지자체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 환경 분야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현재 각 도로의 차음벽은 강철재질의 차음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