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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성종 때의 이야기다. 월운천이 흐르는 청주시 운동동, 월오동에는 양수척(楊水尺)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우리말로 '무자리'라고 하는 양수척은 버들고리로 키나 체를 만들어 팔던 천민집단이다. 양수척 삼형제는 불효막심하고 패악 질이 심하였다. 늙은 부모를 고려장시킨다고 떠드는가 하면 동네 잔칫집, 초상집에서 번번이 행패를 부려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동네 사람들이 이를 말리려 해도 양수척 삼형제는 힘이 장사여서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이 때 효자마을(청원군 남일면 효촌리)에 살던 선비 경연(慶延) 선생이 양수척 삼형제를 불러 인륜을 가르쳤다. 경대유(慶大有)로도 불린 경연선생은 이산(尼山) 현감을 지낸 선비로 그 또한 이름 난 효자였다. 부친이 병환으로 몸져눕자 경연은 한 겨울임에도 냇가에서 잉어를 잡아다 끓여 드렸다. 경연의 효행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부친의 병환이 나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연의 효행이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경연 선생에게 인간의 도리를 배운 양수척 삼형제는 이에 감복하여 개과천선, 효자가 되었다. 마을을 돌며 지난날의 과오를 일일이 사죄하는가 하면 노부모를 업고 다닐 정도로 효도를 했다. 운동동, 월오동 일대에 구전돼오던 효자이야기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1860년(철종 11년), 마을 사람들은 양수척 삼형제의 효행을 기려 월운천가에 양수척 효자비를 세웠다. 반상의 구별이 매우 엄격했던 조선사회에서 천민의 효자비를 세운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효자양수척지비(孝子楊水尺之碑)라고 새긴 효자비는 풍파에 시달린 데다 관리 소홀로 비문이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상태다. 더구나 몇 년 전에는 트럭이 이 비를 들이받아 두 동강이가 났다. 곧바로 접합되기는 했으나 비신(碑身)은 상처투성이다. 비록 무심한 세월 속에서 비신은 수난을 당하였으나 그 안에 담긴 비문은 이곳이 효자 마을임을 말해주고 있다. 운동동, 월오동과 인근의 효촌리가 효자마을로 불리는 것은 경연선생의 효자비와 양수척 효자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에 청주문화의 집은 효자마을을 모티브로 하여 올 1년 동안 양수척 효자비가 있는 다다 자연미술학교에서 '효자손으로 문화예술 맛보기'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도농복합지역의 주부 20여명은 이곳에서 효자마을의 유래를 배우고 효도와 연관된 여러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익혔다.

부모님의 초상화 그리기, 효도 문패 달기, 부모님 밥그릇 만들기, 안경 집 만들기, 효도 커튼 만들기, 효자 등(孝子燈) 밝히기 등 효도와 연관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처음엔 효도와 문화예술이 아무 관련 없는 것처럼 느끼던 주부들도 효도의 불심지를 밝히면서 효심을 다졌고 문화예술의 짙은 향기를 맛보았다. 어떤 때는 부모에게 무심하였던 점을 토로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고 효자커튼이나 안경집 등을 만들 때는 정성을 모아 한 뜸 한 뜸 작품을 완성했다. 또 수강생들이 얼마간의 성금을 내어 양수척 효자비 안내문도 설치하였다.

그렇게 하여 우여곡절 끝에 만든 수백 점의 효도작품을 지난 12월 9일부터 15일까지 우암산 기슭에 있는 브룩스 갤러리에서 전시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냈다. 비록 서툰 솜씨이기는 하나 효심을 한데 모은 작품이기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운동동, 월오동 주민들이 펼친 이번 효자 프로그램을 범시민적인 효자운동으로 펼쳐나가면 어떨까.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부모가 계신 집에 불을 질러 돌아가시게 하고, 고시원에 불을 질러 무고한 중국동포를 죽게 하고, 부부싸움을 하다 어린 딸을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하는 인륜의 실종시대에 효도운동은 인간성 회복의 기본이 될 만한 덕목이다. 효는 모든 행위에 기본이 되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다. 효는 19세기의 유물과 같은 낡은 가치관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도덕을 일으켜 세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타민과도 같은 삶의 요소다.

앞으로 운동동 일대에는 택지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대단위 택지가 개발되면 불가피하게 공원이 들어설 것이다. 이 공원의 컨셉트를 '효도'로 잡으면 어떨까. 이른바 효자공원을 조성하여 효심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매우 유익하리라 판단된다. 때마침 무심하게 방치되었던 양수척 효자비가 도문화재로 지정예고 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주부들의 효심이 결실을 본 것이다. 세밑을 맞으며 효도의 등불이 된 양수척 효자비의 깊은 뜻을 새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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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