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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중략"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일절이다. 연탄에 얽힌 서민의 애환이 연탄의 불길처럼 꾸물꾸물 피어오른다. 봄에는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꽤나 힘들었고 찬바람이 불면 겨울나기 채비에 손등이 얼어터지던 1960~1070년 대 우리 부모들의 자화상이다. 수백 장의 연탄을 광 속에 쟁여놓고 쌀 두어 섬 들여놓으면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았다. 연탄은 겨울이 오기 전, 미리 들여놓아야 불 피우기가 좋고 화력도 좋으며 연탄가스 냄새도 덜 난다.

부잣집에선 겨울준비를 서둘러 마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던 밑바닥 인생들은 한 손에 봉지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연탄 한 장을 새끼줄에 꿰어 처자식이 기다리는 쪽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금방 찍어낸, 습기가 많은 연탄은 불도 잘 붙지 않고 연탄가스 냄새도 지독하다. 등 굽은 아비의 한 숨소리와 헝큰 머리를 제대로 빗지 못한 어미는 연탄 앞에서 청솔가지로 불을 피우며 짠지 쪽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쩌다 연탄집게가 휘거나, 덜 뭉쳐진 연탄을 집으려면 반 토막 나기 일쑤였고 레일 식 연탄을 아궁이에서 끌어내다 삐끗하면 화덕이 넘어져 불씨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통에 연탄불을 다시 피워야 했다. 급할 때는 이웃집에서 불씨를 얻어오기도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그 지독한 가스냄새를 몇 시간씩이나 맡아야 했다.

70을 넘긴 할머니는 번번이 연탄 가는 시간을 놓쳤다. 번개탄이 나오기 전에, 연탄을 삼발이 위에 얹어놓고 솔가지나 삭정이로 불을 지피는 일은 내 몫이었다. 연탄에 불이 붙으면 할머니 몰래 라면의 기막힌 맛을 부뚜막에서 혼자 즐겼다. 연탄 한 장으로 구들장을 덥히고 아랫목에 깔린 작은 이불에 발을 넣으며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막던 시절이 꿈결같이 아련하다.

연탄을 피워도 문풍지 틈새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지는 못했다. 발을 뜨겁고 코는 시린, 냉 · 온탕 식 방에서 긴긴 겨울밤을 지새운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형편이 좀 나은 집에서는 방과 마루 등지에 맹꽁이 난로를 피워 냉기를 쫒았지만 도배, 장판이 허술하거나 아궁이, 방구들을 정비하지 못한 서민 가정에선 연탄가스 사고가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였다. 연탄가스 중독사는 오늘날의 교통사고보다도 더 흔하게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최희준의 노래 '하숙생'이 유행하던 시절, 수많은 하숙생들은 하숙집 주인의 야박한 연탄갈이에 몸을 떨었다. 연탄 한두 장을 가지고 밤새 이방, 저방 아궁이로 연탄을 옮기는 통에 하숙생과 입씨름도 잦았다. 아랫목은 늘 미지근했고 부족한 온기는 내복으로 보충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동천주교회 앞 철 길 옆으로는 연탄공장이 사열을 했다. 대성연탄, 태양연탄, 동원연탄 등 연탄 공장 앞에는 연탄 찍기를 기다리는 트럭과 리어카가 장사진을 쳤다. 어쩌다 연탄 공급이 늦어지거나 채탄량이 줄면 연탄 값은 들먹거렸고 서민들의 한 숨은 겨울거리로 흩어지다 얼어붙었다.

한겨울, 연탄에다 구워먹는 삼겹살 구이는 겨울철 별미였다. 청주약국 옆, 만수집, 딸네집, 터미널 옆 고속주점 등의 삼겹살이 유명하였다. 퇴근 무렵에 이곳으로 몰려든 직장인들은 삼겹살과 소주 한잔으로 하루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청주의 연탄구이 삼겹살은 그대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요즘도 그때의 추억을 더듬어 '연탄구이 삼겹살'집이 생겨나고 있지만 왕소금을 술술 뿌린 옛 맛을 되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선 음식 맛이 변한 게 아니라 사람 입맛이 변한 것이다.

기름 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한동안 보기조차 힘들었던 연탄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장에 350원~400원 정도 이므로 기름이나 전기 보다 값이 훨씬 헐하다. 징검다리 등 일부 사회단체나 기업체에서는 매년 겨울철을 앞두고 독거노인, 차상위 계층, 소년소녀 가장, 사회복지시설 등에 연탄을 공급해주는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징검다리는 올해 어려운 가정에 14만 장의 연탄을 공급해 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연탄에 담은 이웃 사랑이 올 겨울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말로는 이웃사랑을 외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살기도 힘들 판에 남을 도울 힘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남는 여분을 쪼개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은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 나눔의 실천으로 올 겨울이 보다 포근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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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