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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권태응 시인 항일운동 재조명되나

생가 텅빈 채 방치·가족 美 이민… 흔적조차 희미
탄신 100주년 충주 칠금동 생가 복원사업 여론

  • 웹출고시간2018.01.11 21:16:32
  • 최종수정2018.01.11 21:16:32

충주출신으로 일제강점기 항일 민족시인인 고 권태응 선생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그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업이 절실하다.사진은 생가터에 세워진 안내석.

ⓒ 김주철기자
[충북일보=충주]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에 저항한 항일 민족시인 고 권태응(1918~1951)선생을 추모하는 기념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권 선생은 1918년 1월 30일(음력) 충주시 칠금동 381번지에서 태어나 충주공립보통학교와 경성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했다.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옥살이를 하다 폐결핵이 악화돼 귀국 후 고향인 충주에서 문학생활을 하다가 6.25전쟁 중인 1951년 사망했다.

경성고보 재학시절 'U.T.R.구락부' 멤버로 활동하면서 일본 식민지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토론하며 민족의식을 키웠으며, 일본인 교사들에게 졸업앨범을 기증하려는 것을 반대했다.

친일성향 학생들에게 몰매를 가한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잡혀가 15일간 구금돼 조사를 받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경성고보 33회 졸업생을 중심으로 '33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이어 1939년 여름방학 시기에 일본 경찰에 검거돼 스가모(巢鴨) 형무소에 투옥돼 수형생활을 하다가 1년 만에 폐결핵 3기의 몸으로 1940년5월14일 출소한 뒤 귀국했다.

충주출신으로 일제강점기 항일 민족시인인 고 권태응 선생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그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업이 절실하다.사진은 황폐화된 생가터.

ⓒ 김주철기자
고국으로 돌아온 권 선생은 고향에서 생활하며 투병생활과 함께 문학 작품 활동,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해 두 번이나 피난을 가는 동안 몸이 쇠약해졌고, 결핵약(마이신)을 구하지 못해 병이 악화돼 1951년 세상을 등졌다.

1968년 5월 5일 제86회 어린이날에 윤석중 선생 등의 후원으로 충주 탄금대에 '감자 꽃 노래비'를 세웠고, 충주문인협회는 1976년부터 매년 10월 권 선생을 기리기 위한 '감자 꽃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권 선생이 안타깝게 세상을 뜬지 55년이 지난 2005년 국가보훈처는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그해 8월 15일 60주년 광복절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그러나 권 선생 생가는 1972년 홍수에 쓸려 허물어졌고, 집터는 밭으로 변했다. 현재 밭 가장자리에 세워진 '생가 터 표지석'만 남아 있는 상태다. 아내와 두 자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 고향에는 가족도 없다.

지난 2007년 충주시와 예성문화연구회가 뒤늦게 '동천 권태응 시인 생가 조사보고서'를 내 선생의 생애와 문학사를 파악해 놓았을 뿐이다.

당시 보고서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 권태응의 생애와 농민소설'을 발표, 항일독립운동가로서의 권 선생의 삶과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가로 위상을 정리했다.

충주시는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생가 터를 매입해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예산 등이 수립되지 않았다.

박일선 충북환경운동연합 대표는 "탄신 100주년이 되도록 충주를 대표하는 항일독립 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인 권 선생과 관련한 생가 터나 가옥, 문학관 등이 없다는 것은 애국충절의고장충주의 수치"라며 "늦었지만 시와 예술문학인, 시민들이 뜻을 모아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주 / 김주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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