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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7년, 청주의 문인들은 민병산의 집과 청주우체국 앞에 있는 오페라 다방을 사랑방 삼아 청주문화의 발전을 모색했다. 이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인의 단체가 설립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단체를 결성하였으니 ‘충북문학 ․ 예술협회’다. 그 해 1월 6일 충북문학 ․ 예술협회 발기준비위원회가 청주시 의장실에서 강대숙, 이설우, 안승각 등 24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고 같은 달 24일, 상당공원 자리에 있었던 공보관실에서 역사적인 결성대회가 열렸다. 모임의 명칭은 ‘충북문화인협회’로 정했다.

1957년 2월에는 전국문총충북지부로 가입하고 초대지부장에 모기윤을 선출하였다. 1959년 11월3일, 개천일을 택해 청주공고 교정에서 문총충북지부 주최로 제1회 충북예술제가 개최되었다. 당시의 예산은 찬조금으로 들어온 돈 50만원 정도였고 나머지는 회원들이 호주머니에서 경비를 충당했다. 충북예총 30년사에 따르면 당시 주요행사는 개막제와 경축 마스게임, 미술작품전시회, 사생현장콩쿠르대회, 서예현장경시대회, 시화전, 시조백일장, 문학의 밤, 종합예술제 등이었다.

4.19와 5.16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충북예술제는 계속되었으나 1961년, 5.16으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해산하고 1962년 1월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충북지부가 결성되었다. 소속단체로 문인, 음악, 미술, 연극, 사진, 변론, 연예, 무용 등 9개 단체를 포괄하였다. 초대지부장에 최병준, 부지부장에 안승각, 이상덕이 선출되었다. 이 당시의 예술제 내용을 보면 예술행사 이외에도 궁술대회, 농악대회, 변론대회, 우표전시회 등 외곽행사를 가지며 주민의 참여를 유도했다.

제8회충북예술제가 열린 1966년은 각별한 해로 기록된다. 충북예술제가 이렇다 할 발전도 없이 제자리결음을 계속하던 중 김효영 지사가 부임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아 예술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도민의 노래(이은상 작사, 김동진 작곡)가 제정되었고 도민의 참여가 늘어 향토축제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게다가 육영수 여사가 참석하여 충북예술제의 축제분위기는 한층 고무되었다. 이때에는 예술행사와 더불어 시 ․ 군 대항으로 ‘청풍공자, 명월공주’ 선발대회가 열려 과열 경쟁을 빚기도 했다. 기간 예술행사이외에도 전야제로 제등행렬이 장관을 이뤘고 축등달기, 상가미화경진대회, 시민위안의 밤 등이 성황을 이뤘다.

순항을 계속해 오던 충북예술제는 1985년, 충북예총이 충북예술제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소위 ‘양반제’를 추진하다가 충북도와 마찰을 일으켰다. 충북예총은 양반의 고장에서 ‘양반제’를 구상하며 선비고장에 걸맞는 양반전, 양반춤 공연, 시 ․ 군 대항 과거시험, 암행어사 출두 등 가히 혁명적인 행사 방안을 내놓았으나 계층 간의 위화감 조성 우려가 있다는 충북도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충북예술제를 열지 못하고 그 대신, 무심천 종이배 띄우기, 인쇄문화의 메카 흥덕사지를 기리는 인쇄문화 축제, 창작가요제 등으로 충북예술제를 대신하였다.

연륜을 거듭하는 동안 충북예술제는 ‘구심점이 없다’ ‘학생 위주의 문예행사다’ ‘주민의 참여가 미미하다’라는 둥 문제점이 돌출되었다. 충북예총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키 위해 여러 번의 세미나를 개최하며 그 개선방향을 모색하였으나 해답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충북예술제에 역사성을 부여하여 가칭 ‘상당 예술제’ ‘서원 예술제’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도 제시되었으나 “예술제의 내용을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꾼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반론에 부딪치기도 했다.

아무튼 충북예술제는 그 굴곡의 역사의 거치며 올 해로 반세기를 맞았다. 몇 년 전 부터는 ‘충북예술제’ 대신 ‘청풍명월 예술제’로 타이틀을 바꾸었다. 그동안 예술제의 이름이 지자체의 이름과 같은 곳은 충북뿐이었다. 충북예총은 제50회 청풍명월예술제를 맞아 그 역사적 의의를 기리며 푸짐한 예술행사를 마련하였다. 지난 21일 있은 개막식에서는 충북예술제의 반세기 족적을 영상과 함께 연극으로, CJB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무용극으로 설명하는 입체무대를 마련했다. 개막행사가 다소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걸어온 반세기, 펼쳐갈 50년’이라는 주제에 걸 맞는 개막식이었다.

올해는 특히 중국 진황시 예술단의 공연, 중국 내몽고 자치구 예술단 초청공연 등 충북예술제의 세계화를 위해 힘쓴 점도 보인다. 그러나 도내 시 ․ 군마다 예술제, 문화제가 수도 없이 생겨난 요즈음 청풍명월예술제가 충북도를 포괄한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축제는 특정 도시 위주로 치러지는 것이지 도 단위를 포괄하기란 매우 힘든 것이다. 청주를 제외한 타 시 ․ 군에서도 음악행사나 전시회 등이 청풍명월 예술제 일환으로 열리고 있으나 기타 시 ․ 군이 느끼는, 축제에 대한 체감지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울러 청풍명월 예술제는 대중과 결합하는 축제로서의 활로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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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