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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남한에서 북한으로 '삐라'가 날아갔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이후 사라졌던 삐라가 다시 풍선을 타고 북한 민중 속으로 날아갔다.

지난 10일 대북 민간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과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솔티 여사 등이 함께 인천 서해상 배위에서 북한에 '삐라'를 날려 보냈다.

***과거엔 북한에 힘 모아준 매개

대한민궁에서 40대를 넘게 산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승공' '반공' '멸공'과 관련된 각종 단어와 구호가 그렇다.

'때려잡자 공산당'과 '의심나면 신고하자'는 가장 대표적 구호다. 초·중·고등 선생님들 모두 한결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 문장들을 강조하고 암송토록 했다. 가장 중요한 '시대의 문장'이었다.

지금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삐라도 있었다. 그리고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면 연필 등 학용품을 주기도 했다. 물론 간첩을 구별하는 지침서도 있었다.

삐라의 어원은 전단을 뜻하는 영어 빌(bill)이다. 영어 발음에 자주 한계를 노출하는 일본인들이 ‘비라??라고 발음하면서 된소리를 잘 내는 우리에겐 '삐라'가 됐다.

우리나라 삐라 중 가장 유명한 삐라는 1953년 살포된 '미스터 백(白)구두'라고 한다. 물론 필자도 들은 얘기다. 그 시기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너무 당연하다. 북측 휴전협상 대표 남일이 흰 부츠를 신은 사진 옆에 다 떨어진 헝겊 신발을 신은 중공군 탈영병 사진을 대비시켜 중공군의 반감을 자극했다는 내용이다.

북한 노동당 창당 기념일에 맞춰 인천 서해상 배위에서 '사랑하는 북녘 동포에게'라는 글을 실어 날린 전단도 역시 삐라다. 다르다면 이 삐라에는 굶주린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한 미화 1달러와 중국 돈 10원짜리가 간간히 섞여 있다는 점이다.

삐라는 전쟁과 첨예한 이념대결의 현장에 예외 없이 등장, 힘을 모으는 매개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치열한 선전전의 도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엔 문구의 시대성 때문에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갖기도 한다.

6·25 전쟁 중엔 25억장의 삐라가 뿌려졌다고 한다. 그 뒤 60년대를 거치면서 남측의 삐라는 주로 경제발전상을 홍보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반면 북측의 삐라는 '제국주의 미군'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비방하고 있다.

미국 역시 전쟁 때 삐라를 이용한 심리전을 폈다. 월남전과 걸프전, 파나마 침공 때도 그랬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는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의 희생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선전용 삐라를 뿌렸다. 2003년 이라크 공격 때는 1천600만장을 뿌렸다.

1997년 이전 남북한은 체제 선전을 하기 위해 서로 삐라를 날렸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한 간 상호비방을 중단하기로 결정되면서 일체의 대북 선전 사업도 중단됐다.

50여 년 동안 뿌려졌던 남북 당국의 삐라가 완전히 사라진 시기는 2004년 6월 이후다. 남북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게시물·전단 등을 통한 비방·선전활동 중지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상호비방 중단을 강하게 요구한 이유는 너무 분명하다. 남한에서 보내는 삐라와 대북방송이 내부를 심각하게 와해시켜 감당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특히 식량난으로 수백만 명이 아사했던 1990년대 후반에 남한이 지속적으로 삐라를 북한에 보냈다면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젠 북한이 불편해 하는 매체

정보가 넘쳐나는 남한에서 북한의 삐라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일반 서민들이 받아들이는 남한 삐라는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남한에 대한 유일한 정보 채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북한에 보내는 삐라에는 탈북자들이 보고 느낀 자유민주주의와 남한의 실상이 적혀 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김정일에 대한 비판적 내용도 싣고 있다. 북한의 반응이 예민한 것은 이 같은 까닭이다.

우리에겐 '삐라의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나 어른이 돼서나 한 번쯤 북한이 남쪽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삐라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다. 파출소에 가는 것도 겁내했다.

그런 삐라가 이젠 북한을 한껏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 의미가 뭘까. 북한의 위정자들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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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