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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8.09.02 21:09:0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우리는 민주주의 하면 으레 서구에서 수입된 제도로 알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에서 피어난 직접민주주의가 발전하여 오늘날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었고 그 제도는 광복 후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서구문화의 우월성 속에 싹튼 일반적 현상으로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발생하기 이전, 한국에도 한국식 민주주의가 있었으며 그 발상지는 다름 아닌 충북 제천이라는 사실도 명심했으면 한다. 이는 필자만의 강변이 아니라 이미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지난 1980년 충주댐 수몰지구 지표조사를 하던 충북대 이융조 교수는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에서 고인돌 11기와 더불어 한 쌍의 선돌을 찾아냈는데 한국민주주의의 기원은 바로 이 한 쌍의 선돌에서 비롯된다.

충주호 담수 이전, 황석리의 황석나루는 거룻배에 버스를 싣고 남한강을 건너던 곳이다. 이 차도선(車渡船)을 거치지 않고는 버스나 인마가 청풍지방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황석리는 지명에서 암시하듯 냇가의갯돌이 누런 빛을 띠고 있다. 이 개펄에는 한 쌍의 선돌이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충주호 담수로 충북대 캠퍼스 잔디밭으로 옮겨 놓았다.

이 거석문화와 연관된 전설은 아직도 현지에서 구전돼 내려온다. 이곳에는 황(黃)씨 네가 살고 있었는데 아들들이 모두 장사였다. 아들들이 모두 자기 힘이 세다고다투자 어머니는 건너 마을에서 돌 나르는 경기를 시켰다. 힘이 장사인 아들들은 강건너 광의리에서 큰 돌을 구해 이곳으로 번쩍 들어다 놓았다고 한다. 전설 속의 이돌이 바로 3천 년 전, 청동기 시대의 황석리의 선돌이다. 황석리의 암 선돌은 끝이 뭉툭하고 수 선돌은 뾰죽하다.

선돌의 외형적 모습은 여타 선돌과 크게 다를 게 없으나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돌 속에 숨겨진 한국 민주주의의, 한국지방자치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다. 이 선돌 주변으로 타원형으로 배치된 회의장 모습이 눈에 띤다. 암 선돌 수 선돌 한 쌍을 사이에 두고 지름 40~50cm쯤 되는 평평한 돌 11개가 반달모양으로 무리지어 있고 중앙에는 회장석으로 추정되는 비교적 큰 돌이 있다. 이를테면 마을회관 같은 구조다.

이 선돌 주변에서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이 상의됐다. 회의장 배치를 보면 요즘의 원탁처럼 수평적 개념이 강하다. 따라서 당시 사회의 우두머리는 지배가(룰러)가 아닌 지도자(리더)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공동 토론의 장이 마련된 이러한 회의장 형태와 고인돌 선돌이 함께 있는 형태는 아샘지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찾아진 것으로 오스트리아의 학자 하이네 겔더른은 이를 두고‘메가리텐’(성스러운 곳)이라 표현했다.

여기에서 보듯 황석리의 선돌은 토종 민주주의의 원류다. 촌장이라고 해서 마을의 일을 혼자 결정하지 않고 선돌을 사이에 두고 둘러 앉아 민주적으로 상의를 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은 화랑도의 맹세를 담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신라 초기의 화백(和白)제도로 이어진다. 6부촌장의 모임은 화백제도는 만장일치를 채택했다.

왕을 뽑는데도 매우 민주적인 절차를 채택했다. 왕의 명칭인 이사금(尼師今)은 치리(齒理)라는 뜻으로 이(齒)가 큰 사람을 말한다. 떡을 베어 물어 이빨자국이 큰 사람을 왕으로 뽑았던 것이다. 이빨이 큰 사람은 연장자이고 또 지혜롭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토종 민주주의를 제쳐두고 민주주의의 원류를 서구에서 찾은 것은 그만큼 서구문화의 우월성에 중독된 탓이다. 이제는 서구문화 위주의 망령을 털어내고 한국 민주주의, 한국 지방자치의 가치와 뿌리를 음미해봐야 한다.

국회연수원의 충북 제천유치가 충북의 큰 현안 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민주주의의 발상지가 제천 황석리임으로 국회연수원의 제천 유치는 이런 역사적 맥락과 궤를 함께하는 너무도 당연한 처사다. 제천 청풍호반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원류를 배우고 이를 계승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청풍호의 맑은 물로 속세의 때를 씻고 재충전을 하여 힘찬 의정활동을 펼치면 어떨까.

강원도 고성과의 경쟁에서 일부 정객들이 고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터이지만 이런 역사적 당위성의 부각과 함께 우리고장 주민과 자치단체, 그리고 이 고장 출신 국회의원들의 초당적인 협조가 이뤄지면 제천 유치가 꿈만은 아니다.

제천은 철도 교통과 도로교통의 십자로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다. 우리는 과거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던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 유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이 경험을 되살려 국회연수원의 제천 유치를 적극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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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