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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깨트려 생활용기로 쓰던 구석기 시대에는 농경문화가 없었다.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 먹는 구석기 채집경제에서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며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농경문화가 열렸는데 관련학계에서는 이를 ‘신석기 시대의 혁명’이라 부른다. 농경문화가 열리며 따비, 돌보습, 갈돌, 갈판, 빗살무늬토기 등 농사기구와 생활용기가 출현하였다. 이처럼 농업은 지구상에서 처음 등장한 산업이다.

청원군은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출토된 1만3천 년 전의 볍씨에 착안하여 ‘청원 생명쌀’을 만들었고 경기도 고양시는 일산에서 출토된 5천 년 전의 볍씨를 응용하여 ‘석기시대 살’이라는 브랜드를 내놓았다. 쌀은 인류의 영원한 먹을거리다. 아무리 시공을 초월한다 해도 쌀을 먹지 않고는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석기시대나 철기시대나 정보화시대를 막론하고 쌀은 밀과 더불어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우리나라에 호미가 출현한 것은 신라 지증왕 때부터다. 철기시대가 열리며 호미, 낫, 보습 등 철제 농기구가 등장한다. 이천년 전부터 사용하던 철제 농기구는 유구한 세월을 대물림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는 사적 제436호로 지정된 선농단(先農壇)이 있다.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유적이다. 이 선농제의 풍습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임금은 풍년을 기원하여 선농제를 올리고 소를 잡아 이곳에 모인 백성을 대접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설렁탕’ 또는 ‘설농탕’의 기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임금은 선농단 남쪽 적전(籍田)에서 몸소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하며 농사를 장려하였다. 고을 마다 동쪽에는 성황당을 두고 서쪽에는 사직단을 두었는데 사직단은 국토의 주인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稷) 두 신위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서울의 사직동과 청주의 사직동 동명(洞名)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청주의 사직단은 사직동 충혼탑 옆에 있다. 사직단에서는 봄, 가을, 겨울에 제사를 지냈으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사직’은 곧 국가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정초(鄭招)와 변효문(卞孝文)은 권농서적인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하였다. 종전 중국의 농사법에서 탈피하여 한국적인 농사법을 저술한 책이다. 이 책에는 직파법, 건답법, 묘종법(모내기)등이 실려 있다. 춘하경은 얕게 하고 추경은 깊게 하라는 영농기법도 엿보인다.

이처럼 이천년 동안 농업은 백성의 천하지대본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60~70년대까지만 해도 농공병진이라는 기치아래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깃발이 논둑에서, 풍물 판에서 흔하게 나부꼈다. 조선시대의 직업관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농사일을 선비 다음으로 꼽았다.

한미 FTA 물결과 무역자유화 파고가 휩쓸고 간 농촌 들녘에는 더 이상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깃발이 나부끼지 않는다. 사농공상의 순위도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며 상공사농(商工士農)순위로 자리바꿈을 한 것 같다. 농사를 지어봤자 치솟는 비료 값, 농약 값, 사료 값, 농자재 값을 빼고 나면 뼈품도 안 나온다. 소, 돼지를 키워봐야 사료 값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해마다 휴경농지가 늘어가고 농업인구가 줄어든다. 공산품 수출의존도가 높아지며 농사를 짓는 것보다 외국서 사다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탈농업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녹색혁명이 일던 70년대의 100%에서 25%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쌀 자급률은 98.3%에 이르지만 보리 쌀 자급률은 45.9%, 밀 0.1%, 옥수수 0.9%, 두류 6.4%에 머물고 있다. 이 수치로 보면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무척 높다. 당장은 아무 상관없으나 기후변화 및 어떤 정치적 함수 관계로 농산물의 수입이 중단된다면 그 파장은 석유 값 파동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석유는 쓰지 않아도 견딜 수 있으나 밥은 먹지 않으면 죽고 만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식량안보요, 식량주권이다. 아무리 정보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먹을 식량은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연 40조원을 농촌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날이 갈수록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숭상해온 농업에 대한 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생산력이 낮은 1차 산업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을 부지해 주는 경건한 산업이다. 언젠가는 농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절대농지의 확보, 자급자족 기능의 확충 등 농업을 둘러싼 요소들을 점검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빈틈없는 영농시스템을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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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