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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1.12 14:52:55
  • 최종수정2015.11.12 14:54:33
이른 아침 가을 끝자락의 날씨가 쌀쌀하면서도 상쾌하다. 요가원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이젠 수련복을 갈아입기 전에 난롯가 먼저 찾는 걸 보니 초겨울이 멀지 않았나보다. 벌건 불꽃을 일으키며 타오르는 화목난로 앞에 모여 곁불을 쬐는 모습이 포근하고 정겹게 느껴온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정담을 나누는데 원장님이 불쑥 "제가 어제 오지랖을 좀 떨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라며 화두를 꺼내셨다. ·

오후반 수련을 준비하기 위해 집을 나와 걸어가는데 수십여 미터 전방에서 서성이는 휠체어 하나가 눈에 띄었단다. 그 휠체어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횡단보도 근처를 왔다갔다만 하고 있더란다.

휠체어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이었음을 알게 되었단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상황을 살펴보니 그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건너가야 하는데 휠체어가 지나갈 틈이 없었다고 했다. 인도 가까운 차도에 꼬리를 물고 길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횡단보도 앞까지 점령을 해버린 것이다. 횡단보도 앞은 자전거나 유모차, 휠체어 등이 용이하게 통행을 하도록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계석 턱이 낮게 되어있다. 그런데 휠체어 하나 지나갈 공간도 없이 주차된 차들로 인해 그 노부부는 아마도 한참동안 난감한 상태해서 무척 당황스러웠으리라.

그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원장님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어제의 감정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약간은 상기된 표정과 강한 어조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폭력'이었다"는 표현이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에 앉아 노부인의 손에 의지 할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와, 연약한 체구로 휠체어를 밀면서 길게 늘어선 차량 사이의 틈을 찾아 같은 길을 왔다 갔다 반복해야만 했던 할머니…큰 폭력이라는 원장님의 말에 깊게 공감했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사회가 제공하는 편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의식중에 하는 어떤 행위로 인해 누군가가 적지 않은 불편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통로가 가로막힌 상황에서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극복 할 수 없는 그 순간에 느꼈을 그 노부부의 좌절감과 훼손된 자존감은 분명 우리가 휘두른 심리적 폭력이다.

그런데 원장님이 더욱 흥분하고 분노를 느꼈던 이유는 또 있었다.

평소 의협심이 남달랐던 원장님은 그 노부부를 어떻게 도와드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휠체어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단다. 작은 체격을 가진 여성의 혼자 힘으로는 휠체어를 들어 올릴 자신이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는 젊은 아저씨를 발견하고는 "저 좀 도와주세요."하고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젊은 남자는 힐끗 쳐다보더니 '별 오지랖 넓은 아줌마를 다 보겠네' 하는 듯한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그냥 가버렸단다. 예상치 못한 젊은 남자의 반응에 마치 뒤통수를 한 데 얻어맞는 것 같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원장님은 할머니와 함께 어렵사리 휠체어를 옮겨 놓고 돌아오면서 한동안 씁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했다. ·

어느 영성 작가의 책을 읽다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 세계를 명쾌하게 정의한 문장이 빈곤한 내 철학적 사유에 포만감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많은 작품을 통해 인생 본질의 '부조리함'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카뮈, 그의 부조리 철학의 키워드가 바로 '사랑'이라고 그 작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카뮈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려면 사람들 사이에 연대감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연대감은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리라.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온갖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은 가슴 따뜻한 사연보다는 흉흉하고 안타까운 소식들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자신만의 고결한 가치관을 소신껏 실천하면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혼탁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능 좋은 무기(?)가 필요 할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사용 가능한 '사랑'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오지랖이라면 어떨까·

나날의 일상 속에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행간에도 사랑이 깃들어 있기를 소망해 본다.

△ 고미화 수필가

-충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수강

-충대수필문학상 우수상 수상

-푸른솔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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