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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음성 5일장을 환하게 비추다

서민의 애환과 휴머니티의 액체 녹아
추석 대목 맞아 곳곳서 즐거운 흥정
외국인 손님도 즐비… 글로벌 명절

  • 웹출고시간2015.09.25 11:04:53
  • 최종수정2015.09.25 11:04:53
[충북일보] 하늘엔 보름달이 차오른다. 땅에선 메밀꽃이 고개를 흔든다. 하늘과 땅이 기운이 풍만하고 사람들 마음에선 풍요로움이 싹트는 계절, 가을 그리고 추석이다.

예부터 추석이 다가오면 5일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곳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었다. 메밀꽃 향기 사이로 로맨스 가득 풍기던 허생원과 그의 장돌뱅이 후손들은 추석 대목을 맞아 전국 각지 5일장으로 모여들었고, 그 지역 가을 민심의 가교(架橋)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5일장은 '아케이드 지붕'으로 성역을 쌓은 상설전통시장-현대적 의미의 재래시장-에 밀려 가냘프게 숨만 내몰아 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충북지역 규모도 30년 전 60여곳에서 40여곳으로 줄었다.

비록 고도 산업화와 도시화 추세에 밀려 시간과 공간의 뒤켠으로 한 발짝 물러나 앉아 있다 할지다로 그래도 5일장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아직까지 농촌경제의 핵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장(場)에는 여전히 삶의 맥박이 뛰고, 끈끈한 휴머니티의 액체가 넘쳐흐른다. 아마도 오랜 세월 장에 서린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리라.

◇ 장의 역사

1983년 음성장의 모습. 당시 음성고추는 숫제 관떼기로 거래됐다. 장정 두 어명이 대저울을 양쪽에서 짊어지고 무게를 달아보고 있다.

ⓒ 충북일보DB
삼한 시대에는 촌락 간에 형성되는 가로시(街路市), 국가 간의 경계시(境界市), 정치의 중심지에 있던 성읍시(城邑市), 자연신을 숭배하는 풍습에 따라 나타났던 제전시(祭典市) 등이 존재했다. 신라 시대에는 지증왕 12년(490년)에 처음으로 수도인 경주에 경사시(京師市)를 개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수도에 설치되는 경시(京市)와 지방에 개설되는 향시(鄕市)가 있었는데, 충북의 시장은 모두 향시에 속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종이 한성으로 천도한 뒤부터 상업이 활기를 띠었다. 이후 조선 중종·명종 때 이르러 충청·전라·경상 등 삼남지방으로 시장이 확산됐고, 순조 때에 와서는 전국 장문(場門)이 1천600여개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 달에 6번, 5일에 1번씩 장을 벌였다.

음성군지에는 구한말이던 1909년 음성지역 5일장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적혀 있는데, 당시 음성에는 읍시장과 무극시장, 2개가 성행했다고 한다.

매달 2일과 7일 개설된 읍시장엔 점상 5명·주막 8개·노점 및 보부상 10여명이 있었고, 한 번 장이 설 때마다 500명 정도가 몰려들었다. 주요 거래 품목은 쌀, 보리, 콩, 소 등이었고 거래 금액은 300원 정도였다.

5일과 10일 들어서는 무극장에는 점상 3명, 주막 10명, 노점 및 보부상 16명이 자리를 잡았었다. 거래 품목은 읍시장과 비슷했으며 운집 인원은 800명, 거래금액은 500원가량 됐다.

음성장의 한 상인이 능숙한 칼질로 동태포를 뜨고 있다.

ⓒ 임장규기자
당시 음성지역에는 객주가 없었으며, 38명의 보부상이 활동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들에 의한 연간 매매 거래액은 2천303엔(円)이었다.

◇ 음성장, 30년 영욕의 세월

해발 204m의 백마령(白馬嶺)을 숨 가삐 오르면 담배와 고추의 산지로 이름난 음성 땅이 한 발치 앞으로 다가선다. 백마산 중턱이나 가섭산(加葉山) 산마루에서 이따금씩 마파람이 불어오긴 하나 높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대개 군이나 면 단위 시장이 도시화·산업화 추세로 사양길을 걷고 있는 게 통례이나 음성 저자바닥은 1980년대 초반에도 매양 북적거렸다.

당시 음성장에선 목물전이 성황을 이뤘다. 두엄 나를 때 필요한 바소쿠리, 샛밥 지어 나를 때 요긴한 대광주리, 전을 부쳐두는 채반, 씨앗을 담아두는 함지박 등 농가에서 필요한 물목(物目)을 잔뜩 차려놓고 손님을 맞곤 했다.

음성천 변 우시장도 제법 성시를 이뤘다. 출하되는 소는 500여두로 향시(鄕市)의 우시장 치곤 제법 규모가 컸다.

아랫녘의 소몰이꾼들은 대개 상주~보은~청주~음성을 거쳐 경기도 장호원으로 빠졌는데, 일단 이곳까지 소를 몰고 가면 송파 소몰이꾼들이 인계인수를 받아 길을 재촉했다. 그래서 경기도와 접경지대인 음성 감곡은 영남과 한양 쇠살주들이 들끓었고, 곳곳에는 마방(馬房)이 즐비했었다.

세종실록에 나타난 음성의 특산물을 보면 쌀, 보리, 피, 콩, 기장, 조, 팥, 녹두, 메밀, 참깨, 뽕나무, 닥나무 등이 있다. 토산품으로는 꿀, 밀, 대추, 족제비 털, 여우가죽, 잇(홍람화), 자초, 종이가 유명했다. 인삼과 산골(自然銅), 복령(茯笭) 등은 약재로 쓰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음성지방의 특산물은 황색 연초와 고추, 과일 등으로 변모됐다. 당시 고추는 연간 4만5천t이 생산되고 이로 인한 농가소득은 110억원에 달했다.

◇ 2015년 추석을 맞은 음성장

2015년 9월 추석 대목장을 맞은 음성장. 갖가지 나물부터 생선류까지 고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 임장규기자
세월이 참 많이도 변했다. 산골마을 음성은 어느새 인구 10만명을 바라보는 '기업 도시'로 거듭났다. 새 일거리를 찾아, 새 가정을 찾아 2억만리 땅에서 건너온 외국인도 8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음성 5일장은 혁신의 물결을 타고 변화의 몸짓을 했다. 봇짐·등짐 대신 1t 트럭이 등장했고, 통영갓을 멋스럽게 쓴 칠순 노인 대신 뽀글 머리에 파란 눈의 외국인이 장돌림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추석 대목을 맞은 음성장은 여느 때 보다 장돌림들로 가득했다. 매월 2일, 7일 장이 서다보니 22일은 추석 전 장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날이다.

하늘 위 뭉게구름을 등에 업은 음성장의 풍경은 여느 때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난다는 점이 같았고, 장꾼들의 흥정 싸움이 평소보다 강렬해졌다는 점이 달랐다. 음성군청 앞 사거리에서 시장로 사거리까지 도로 970m를 가득 메운 장사진의 행렬도 그 여느 때보다 신명났다.

"자자, 햇고추 들여가시오. 이게 그 유명한 음성 청결고추라오."

음성 고추상인 김순희씨가 고추를 정리하며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 임장규기자
장 입구에 펼쳐진 음성고추 직거래 장터에서 흥정이 한창이다. 감곡면 오향리에서 왔다는 김순희(여·45)씨가 고추 포대를 한 가득 내려놓고 손님을 유혹하나 매기는 영 신통치 않다.

"저 앞에 보세요. 음성고추 직거래장터 바로 앞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고추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어요. 대부분 남쪽 지방의 고추를 들고 왔는데, 품질보단 가격으로 승부하죠. 가뜩이나 고추 농사가 힘든데 이거 때려치던가 해야지 원…."

음성 고추 가격도 지난해 ㎏당 9천500원~1만원에서 올해 8천원으로 떨어져 고추 상인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 그녀의 푸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꾼들은 야속하게도 타지 고추 판매상에게만 몰려든다.

"이번 추석 때 둘째는 시집 보내는 겨?" "갈 생각을 안 햐. 머슴아가 있어야 보내던가 말던가 하지, 걱정이여 아주."

장터 중간 목에 자리 잡은 국밥집에선 사돈에 팔촌이 떠드는 만담이 낮술과 함께 허공에 걸린다. 소머리 국밥과 순대, 막걸리 조합으로 이뤄진 안주는 장터에선 최고의 산해진미다.

농익어가는 무용담을 뒤로 하고 골목에 접어드니 팔순 노인 한 분이 무거운 표정으로 콩을 하염없이 깐다. 증평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는 노인은 직접 기른 나물과, 콩, 채소를 한 가득 풀어놓고 손님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안 팔려 도통. 1만원 어치는 팔았을라나? 추석이 코앞인데 왜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지…. 내 성질나서 점심도 안 먹었어."

노인이 신문지 위에 펼쳐놓은 매대 한켠엔 솔잎이 가득하다. 산에 가서 직접 따온 솔잎이라고 한다. 추석 송편에는 왜송(리기다 소나무) 아닌 조선송 솔잎을 쓰는데, 조선송 솔잎은 잎 가닥 2개(리기다는 3개)가 붙어 있는 게 특징이다.

추석 분위기를 살리고자 사진 한 장을 요청했더니 노인이 대뜸 화를 낸다. "안 댜, 큰일 나! 이거 산에 가서 몰래 따온 거란 말이여. 요즘엔 단속이 심해서 걸리면 벌금 내야 된단 말이여. 저리가 기자 양반. 장사도 안 돼 죽겠구만 누굴 약 올리나."

괜스레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고 자리를 떴다. 수산물 코너로 발길을 돌리니 이곳에서도 흥정 입씨름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내용을 엿들으니 '원산지'를 캐묻는 게 대부분. 아무래도 추석 차례상에 올릴 음식물이라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추석 대목장이라 그런지 매대 위 물품들은 대부분 국내산이었지만, 조기는 달랐다. 국내산 조기가 하도 비싸 중국산 부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장터에는 결혼이주여성들도 많았는데, 이들이 과연 조기와 부사를 구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가 중천을 지나 붉은 색 옷을 갈아입자 추석 대목장의 열기도 서서히 식어간다. 장 한켠의 우뚝 솟은 감나무에선 까마귀 한 마리가 신나게 목청을 뿜어댄다. "까악~까악~." 아마도 추석 대목을 맞아 감나무에서 배 떨어지길 기다리는 비범한(?) 까마귀가 아닐까.

차오르는 보름달만큼이나 음성장을 찾는 사람들과 새들의 마음도 풍만해져간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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