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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삼겹살상인연합회 총무

순한 바람이 불고 훈훈한 땅기운이 돌면서 분평동 주택가 도로변 회양목에도 물기가 올랐다. 십 원짜리 동전만 한 잎들이 벌써 제법 짙푸른 색을 띠고 있다. 겨우내 메말라 있던 잎들에 따스하고 거름기 있는 물기가 돌면서 회춘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봄을 맞아 새로 돋아나는 잎보다 겨우내 삭풍에 견뎌왔던 잎들이 먼저 살아난다. 봄이라고 새로운 잎들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꿋꿋이 매달려 있던 잎들과 새로 돋아나는 잎들이 한데 어우러져 온전한 회양목 숲을 이루는 것이다.

지난 5일 내덕동에서 갑자기 몰아닥친 광풍으로 청주시내 곳곳의 오래된 정원들에 심겨진 작은 나무들이 사시나무 떨듯 하고 있다. 따스한 입김 같은 봄바람일 줄 알았는데, 긴 겨울잠을 자느라 딱딱하게 굳은 몸을 부드럽게 깨워줄 훈풍일 줄 알았는데, 내 팔다리 같은 나뭇가지를 똑똑 분질러 버릴 강풍일 수도, 내 몸뚱아리 같은 나무를 통째로 뿌리째 뽑아버릴 광풍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예보 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청주 북부 도심에서 풍부한 자양분을 품은 온난한 바람이 불어 무심천 둔치 버들가지에 물기를 오르게 하고, 무심천변 개나리에 꽃을 피울 것이라고 했다. 청주 전역에 봄을 재촉하는 바람이 불면서 시내 곳곳에 뿌리를 내린 정원수에도 꽃이 피기 시작하고, 멀리서 수많은 벌들이 찾아 날아들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청주에 아름다운 봄이 도래할 것이라고 달콤한 말을 했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예보와는 달리 훈풍이 아니고 폭풍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대로라면 겨우 얕은 바닥에 뿌리 내리고 있는 연약한 나무들을 휩쓸어버릴 수도 있는 미친바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2년 전 바람은 어땠나· 청주 비하동에서 시작된 바람은 당초 예보와는 달리 삽시간에 광풍으로 돌변했다. 멀쩡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가고, 사지 잘리듯 가쟁이가 부러져 나갔다. 수많은 나무들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사그라져 갔다.

어림짐작으로 생각만 했을 뿐 누구도 그 바람의 세기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으며, 주먹구구식으로 따져 봤을 뿐 누구도 그 바람의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감히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 같은 바람이 이미 전국 곳곳을 강타한 것을 보면 사실 미필적 고의성이 다분한 범죄였다.

청주 비하동 외곽에서 시작된 광풍은 먼저 도심을 강타했다. 사람들은 당장의 편리함과 호기심으로 물밀듯 바람 부는 언덕으로 몰려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리함과 경쟁력을 탓할 게 없다는 논리는 순풍처럼 작용했다. 도심에 있던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휩쓸리고 부딪치면서 부러지고 뽑혀갔다. 1,700여 그루가 살아가던 성안길 정원의 나무 가운데 이미 400여 그루가 뽑혔고, 고사 직전의 나무도 200여 그루가 넘고 있다. 도심 정원이 통째로 멸절될 위기에 빠져 있는 셈이다.

바람의 진원지 인근 정원도 어느새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복대동 도로변에 있던 알록달록한 나무들이 강풍의 영향을 직접 받으며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다. 말뚝을 박아보고 끈으로 묶어 보며 견뎌보려 하지만 광풍 앞에서 모두 속수무책이다. 인근 복대시장 키 작은 나무들도 썰물에 휩쓸리듯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사실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어느 특정지역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도심 공원이나 도로변 정원이나 심지어는 주택가 작은 정원에도 바람은 속속들이 파고들어 도시 전체의 숨통을 조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를 살리고 정원을 보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바람소리에 가려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2년 전의 바람이 청주에 다시 일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진행 중인 바람의 온갖 생채기를 맨눈으로 보면서 또 다른 광풍을 일으켜선 안 된다. 그동안의 쓰라린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로 이젠 어느 정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똑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신, 덕이 많은 내덕동 마을에서는 광풍 대신 봄바람 같은 문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오래된 정원의 작은 나뭇가지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주며, 대로변 키 작은 회양목 잎에 귓바람을 불어줄 따듯한 바람이 불게 해야 한다. 원래 그곳은 문화의 바람이 불어오던 골짜기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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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