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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충북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를 연출하여 주목받던 영화감독 최고은은 32세에 요절했다. 그는 월세를 밀려가면서도 살기위해 염치없게도 주인집에게 쌀이나 김치를 얻고자 하였다. 그에게는 이 쌀이나 김치는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매달릴 수 있는 끈이었지만 결국 그는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그가 염치를 무릅쓰고 살고자 했던 희망은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예술로 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망가져가는 그의 몸만큼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땅의 예술가들은 일용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 그런 임금방식하고는 전혀 다른 딴 세계에 존재한다. 구본주라는 조각가의 죽음이 그랬다. 한 끼의 식사조차 보장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삶이 존재하고 그들의 행위가 매도되는 한, 진정한 예술이란 공허하고 허망한 메아리다. 아무리 문화예술인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여도 이 사회에서 예술가들의 행위는 일용노동자들보다 못한 것이고 쓸데없는 것이다.

며칠 전 연극배우 이상관이라는 후배 하나를 멀리 보냈다. 조문하고 애도하고 고개 숙여 눈물도 흘렸다. 애도하고 슬퍼만 하는 것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었다. 80년대 대학연극동아리에 들어가 52세의 나이로 삶의 막을 내릴 때까지 그는 평생 연극인으로 살았다. 청년극장 단원으로 그리고 91년 극단 새벽을 창단하고 연극배우로 살며 오셀로, 이수일과 심순애, 깡통, 허삼관 매혈기 등 7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였고 충북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극단이 위기에 있을 때 그것을 맡아 후배들의 무대와 생계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예술가로 산다는 게 외로움과 삶의 피곤함을 일상으로 스스로의 무기력증에 빠지는 허망하고 고달픈 것임을 너무도 잘 알았다. 가족에게 미안했지만 결코 자기를 찾는 작업도 놓을 수 없었다. 예술가로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고 그 것이 한없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공허한 작업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삶을 힘겹게 살면서 그의 몸은 갈 곳이 없었을 것이다. 예술을 하며 망가진 몸으로 그냥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이 그에게는 희망일 수 있었으리라.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논리나 철학이 아니라 실천에 있는 것이다. 예술로서 어떻게 사회를 풍요롭게 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명제와는 별개로 예술가로 사는 것은 예술밖에 모르는, 예술이 전부인 절실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에겐 내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해내려하는 깊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목마른 기다림으로 죽을 것 같은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그 절실함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삶인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대로 세상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힘을 가진 존재가 예술가이고 그것이 예술가로서의 삶인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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