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자 수필가의 《숨은 촉》이 제시한 존재의 방법은 바로 인생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숨은 촉≫은 256면에 주옥같은 수필 39편을 수록했다. '무죄, 풀 뽑는 여자의 변, 굼벵이의 열반, 산마을의 아이, 그 산에 가면' 등 5부로 나뉘어 실린 작품들은 '자연 속에 의미 있는 존재' '존재의 양면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있게 존재하는 방법' '그리움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들'에 대한 천착이 이루어진다.
수필문학은 체험과 사색으로 얻은 진리여야 한다. 이 책에 제시된 삶의 의문들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체험과 사색으로 시작하여 철학적 진리를 터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그의 개성적인 언어를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작가가 세계를 향하여 던지는 시선의 방향에 따라 수필적 상상은 그려진다. 작가가 독창적인 시선에 의해 관찰한 세계는 내면에서 청국장처럼 발효되어 내면화된 다음 그의 언어로 형상화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의 수필문학에 드러난 독창적 인식은 가슴을 울리어 독자는 마침내 활활 타오르는 예술적 불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표제 작품인 〈숨은 촉〉에 드러난 일상은 읽는 사람을 잠시 놀라게 한다. 건축 현장에서 발견한 '숨은 촉'을 보면서 '촉'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촉'이란 대들보를 받치는 기둥머리 한 부분에 깎아지른 쐐기를 말한다. 웅장한 건물에 비하면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건물의 균형을 잡아 주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여기서 촉과 함께 목공과 도편수의 존재 가치를 가벼이 할 수 없음을 작가는 깨닫는다. 결국 이 사회에 숨어 있는 촉과 같은 존재들의 소중함에 스스로 감동한다.
수필집 《숨은 촉》에 실린 39편의 작품 중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숨은 촉'이 된 것은 그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사실은 작가의 독서량이다. 작품 한편 한편에 담겨 얻어내는 지적 소득을 낱낱이 설명할 수조차 없다. 실제로 김애자 수필가의 고백을 들어보면 표제작인 〈숨은 촉〉이란 한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 건축학개론을 독파했다고 한다. 그의 독서는 사서와 삼경, 문학, 고전, 역사, 축산, 음악, 미술 등 종류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내면화된 독서는 작품을 구성하는데 고스란히 수용된다. 작가는 짧은 글인 수필에 액자식 구성이나 병렬식 구성으로 많은 지적 정서적 소재를 담는데 효과를 보고 있다.
독서를 통한 풍부한 어휘력은 순수한 우리말을 적재적소에 살려 쓰는 문인으로서의 책무를 온전히 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눈에 띄는 것만 나열해도 '머루 덩굴 아래서 바장인다' '포갬포갬 쌓고' '손가락 하나 옴나위 못하고' '어마지두 겁을 먹었다.' '각단지게 맘먹고' '기둥머리 한 부분에 이에짬이 생기게 되면' '(고양이가) 자울자울 졸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애자 작가의 ≪숨은 촉≫은 우리에게 어디에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삶임을 일러 준다. 수필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는 문학 양식인가, 수필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의 의문을 풀어주는 문학의 숨은 촉이 되기에 충분한 책이다.
숨은 촉

면수 : 256면
발행 : 선우미디어
가격 :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