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형수와 빈센트 반 고흐는 정신착란증으로 죽었다.
화가는 해바라기 그림을 남기고 시인은 해바라기 시를 남겼다. 함형수 시인은 생명파 시인답게 생명이 넘치는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
비생명적인 묘비 대신 정열적인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한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태양처럼 정열적이었던 사랑과 삶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한다.
해바라기 줄기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보리밭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 생명의 터전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노고지리는 아직도 식지 않고 날아오르는 자기의 꿈이라고 생각해달라고 한다.
이 시를 읽으면 어릴 적 고향의 품에 안긴 듯 포근하고 아늑하다.
해질녘이면 염소가 들어오고 소를 앞세운 농부가 들어온다.
꽃밭에서는 계집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들리고, 느티나무 가지에선 사내아이들이 마징거제트처럼 날아다닌다.
잊어버린 행복을 다시 찾은 듯하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은 듯하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게 힘이 불끈 솟는다.
벌거벗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배고픈 줄 모르고 온종일 쏘다니는 소년이 된다.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처럼 하늘 꼭대기에 올라 지구의 양끝을 바라본다.
시인/권희돈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함형수(1914 - 1946)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