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에서 매우 독특한 영역을 가진 작가로 알려진 정씨는 이 책에서 작가 특유의 문체로 죽음과 구원, 존재의 퇴조 등 인간 본연의 문제를 다룬 10편의 소설을 선보인다.
이 책은 소설 속 인물들이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들의 독백은 작가가 되었다가 다시 소설 속 인물의 것이 되기도 하며 전혀 다른 누군가의 음성이 되기도 한다. 희망도 욕망도 없이 최소한의 삶만을 유지하며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소설 속 인물들.
정씨는 이들의 낮은 중얼거림을 천천히 뒤따라가는 형식으로 그려낸다.
책 제목이자 부제이기도 한 ‘목신의 어떤 오후’는 세 사람이 호숫가의 공터에 소풍을 나온 것에서 시작된다.
파이프 담배를 문 그, 그의 사촌인 그녀, 그리고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나. 마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들처럼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세 인물들.
그들은 각자 아버지와 어린 시절 연인과의 사랑과 현재의 삶 등 익숙한 것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얘기한다.
이 책은 모두 10편의 소설을 담고 있는데 세 편의 연작소설인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는 작가 정씨의 문학세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물속의 알람 소리’라는 부제의 1편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사는 남자, 2편은 토끼가죽 코트를 입고 담비가죽 모자를 쓴 채 바닷가의 동굴에 사는 인물, 3편은 2편에서 주인공과 조우한 노인과의 이야기다.
이와 함께 ‘브라운 부인’, ‘여행의 즐거움’, ‘목신의 어떤 오후’, ‘추억의 한 방식’, ‘닭과 함께 하는 어떤’, ‘목가적인 풍경’, ‘유원지에서’ 등 모두 10편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작가 정씨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해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실린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달에 홀린 광대’, ‘겨우 존재하는 인간’, ‘꿈’,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하품’ 등이 있다.
/ 김수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