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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은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는 날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날, 가정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잇따라 펼쳐져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기초단위다. 가정이 건전해야 나라도 밝다. 가정이 멍들면 사회도 침울해진다.

오늘날 가정이 파탄 나고 이혼을 밥 먹듯 하며 비행청소년이 자꾸 늘어나는 것은 가정에서의 갈등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부부 사이가 안 좋고 부자, 모녀 사이가 원만치 못할 때, 그 파
장은 사회 문제로 이어지기 일쑤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고어는 캐캐묵은 가치관이 아니라 어제나 변치 않는 진리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원만한 가정을 이루는 으뜸 가치관이다. 벼슬길에 나간 관리가 부모의 병환이 위중하면 사직을 하고 향리로 돌아와 부모의 환우를 돌봤다.

충(忠) 효(孝)의 가치관은 결합하여 나라와 집안을 평온케 하는 상승작용을 일으키지만 두 가치관이 맞부딪칠 때에는 충(忠)보다 효(孝)를 선택했던 것이다.

예로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알려진 청풍명월의 고장에는 수많은 효자가 탄생하여 후세의 귀감이 되었다. 부모가 병환이 들면 엄동설한에도 산행을 하여 약초를 구하고 응급상황이 닥칠 때는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는‘단지’를 감행했으며 부모의 배변을 맛보아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감분’도 마지않았다. 영동의 효자 채형온(蔡亨溫)는 아버지가 성병에 걸리자 아버지의 성기를 입으로 빨아 고쳐 드렸다.

효자이야기는 전국 어딜 가도 수도 없이 널려 있다. 그런데 청주에는 청주만의 독특한 효자이야기가 있다. 청주시 운천동 다다 자연미술학교 담벽 가까이에는 이름 모를 효자비 하나가 세월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비문내용을 판독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자세히 살펴봐야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비문에는 양수척 효자비(楊水尺孝子碑)라는 여섯 글자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1860년(철종11년)에 해 세운 이 비는 높이 114.5cm, 너비 34.5cm, 폭 23cm 크기로 화강암 재질이다. 비지정 문화재인데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비문이 날로 마모되고 있다. 이 비문의 사연은 대충 이렇다.

이 동네에는 힘센 양수척 3형제가 살고 있었다. 양수척이란 버들고리로 체나 키를 만들어 살던 유랑집단으로 천민 취급을 받았다. 우리말로는‘무자리’라고도 부른다. 양수척 3형제는 패악 질이 아주 심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마구 두들겨 패기도 하고 잔칫집이나 초상집을 찾아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마을사람들은 힘센 양수척 3형제의 행패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경대유(慶大有)선생은 양수척 3형제를 집으로 불렀다. 경대유 선생은 효자로 이름난 인물로 이산(尼山)현감을 지냈다. 경대유 선생은 양수척 3형제에게 인륜의 도리를 가르쳤다.

이에 감화를 받은 양수척 3형제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지난날의 잘못을 일일이 사죄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를 극진히 모셨다는 이야기다.

반상의 구별이 뚜렷한 조선시대에 천민의 효자비를 해 세운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다. 충효비, 열녀비, 공덕비 등 비문의 모두가 양반일색인데 천민의 효자비가 홍일점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희귀한 비문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길가에 방치되어 있다. 몇 년 전에는 트럭이 운전부주의로 이 비를 받아 트럭은 전복되었고 비문은 두 동강 났다. 이 소식을 들은 문화재 당국은 시멘트로 땜질을 하여 겨우 복원했다. 효자비 사연도 기구하지만 효자비 자체도 기구한 운명에 놓여 있다. 비각(碑閣)도 없이 비바람을 그대로 맡고 있다.

이 비문과 인접한 다다 자연미술학교에서는 청주문화의 집과 공동으로‘효‘를 주제로 한 문화예술 행사가 4월부터 12월까지 열리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양수척 효자비의 사연을 미술을 전공한 이은희 선생 지도아래 그림으로, 시와 노래로 재창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달랑 카네이션 한 송이나 봉
투를 드리는 것으로 인사치레를 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일년내내 효심을 빚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관에서 푸대접받는 효자비, 민에서라도 아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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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