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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현대미술의 1세대 '이완호'

작품으로 태어나 우리 곁에 오다
자연을 사랑한 '문인화가'… 2007년 작고
미술계 후학들, 청주박물관서 추모전 마련

  • 웹출고시간2014.03.10 19:46:40
  • 최종수정2014.03.10 19:46:40
"메마른 날들이 이어지더니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 유난히 주위가 조용하다. 나지막한 음악소리가 고요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큰 걱정 없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복이다."

그는 소박했다. 순수했다. 욕심이 없고, 자연을 사랑했다. 곰팡내 나는 작업실조차 그에겐 행복한 일터였다.

'충북 현대미술의 1세대'라 불리는 고(故) 이완호(1948~2007) 작가.

그가 살아서 우리 곁에 다시 온다.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과 그림이 후학들에 의해 다시금 빛을 본다. 11일부터 4월13일까지 '추모전'이란 이름으로 그의 영혼이 국립청주박물관에 강림한다.

◇무심·자연·칼리그람의 세계

이완호는 우리 현대 회화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회화양식을 구축했다.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을 글로 써 그림의 여백에 채워 넣었다.

그의 그림은 '서한체(書翰體, letters-style)' 또는 '칼리그램(calli 글-gram 그림)'이라 불린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기(餘技)로 그렸던 문인화(文人畵)의 현대판 버전으로 이해하면 좋다.

꽃 Flower.

79X79cm. Acrylic, Pencil on Canvas. 1992~2003.

ⓒ 이완호
이완호는 인위적인 걸 싫어했다. 자연 그대로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엔 꽃과 나무가 많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 글은 상당히 서정적이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이완호는 홍익대 미술학부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당시 동기생들과 'Group-X'를 창립, 미술 그룹전을 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전쟁 2세대이자 386세대인 그는 산업화와 물질주의에 맞서 예술의 정화(精華), 즉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꿨다.

그러면서 '무심(無心)'을 동경했다. 그에게서 무심은 생각하는 마음이 없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거대 도시에 살면서 물질화된 사물에 관심이 없다는 이른바 '무상(無想)'을 뜻했다.

◇제2의 고향, 충북… 세상을 등지다

고 이완호 작가의 생전 작업실 모습.

1976년 충북대 미술교육과 강의를 맡으면서 충북에 정착한 이완호는 59년 인생 중 30년을 청주에서 보냈다. 1978년엔 서양화가 연영애(서원대 교수)씨와 결혼했다.

1986년 도내 최초의 서양화가 모임인 '무심회화회'를 창립,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젊은 후학들과 그림을 통한 교감을 했다. 1994년엔 충북판화가협회를 만들어 판화 저변확대에 힘썼다.

왕성한 작품 활동과 전시회, 후학 양성에 주력하던 그는 돌연 2007년 4월10일 우리 곁을 떠난다. '급성 임파선암'이란 무서운 병은 발견 40일 만에 그의 붓을 내려놓게 했다.

◇사후 첫 추모전 개최

이완호의 후배와 제자, 유족 76명이 뜻을 모았다. 김수현 충북대 명예교수가 추진위원장을, 김정희 충북대 조형예술학과 교수가 실행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11일부터 4월13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 내 청명관과 청련관 전시실에서 이완호의 유작을 선보인다. 사후 처음으로 열리는 추모전이다. 개막식은 15일 오후 3시 청명관에서 진행된다. 앞서 1시간 동안은 이완호를 기리는 김복영 미술평론가의 강연이 펼쳐진다.

청명관에는 시기별 대표작 중심의 회화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 청련관은 드로잉·판화 작품 40여점으로 꾸렸다. 그가 생전에 쓰던 유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추모전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충북 현대미술 1세대인 이완호 작가의 시대정신과 예술세계를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라며 "지역 미술계에서 어렵게 마련한 뜻 깊은 자리인 만큼 많은 관람을 바란다"고 말했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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