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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1.20 18:02:51
  • 최종수정2014.01.20 18:02:51

박문희

충북도의회 의원

충북은 현재 우리나라 바이오분야의 중심으로 서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오송을 중심으로 하는 충북 바이오는 상당한 강점을 갖추었다. 오송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본부 등 6개 보건의료 국책기관들이 입주하였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중심에 둔 생명과학산업단지에는 국내 유수의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여기에 2013년에 완공한 신약개발지원센터 등 국가 4개 핵심연구지원시설을 비롯하여 국립보건연구원, 인체자원은행, 입주예정인 줄기세포연구센터 등 연구기반도 마련되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의 바이오 관련 연구, 생산시설이 집약된 지역은 드물다. 교통도 편리하다. 국내 유일의 KTX 분기역인 오송역이 있다. 중부내륙고속화도로가 완비되었고, 앞으로 강릉과 목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이 갖추어지면 전국 어디서나 같은 시간거리에 놓인다. 올해 기능보강이 이루어지는 청주국제공항까지 더하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접근성까지 좋다.

또한, 대덕연구단지에서 오창에 이르는 과학벨트와 연결되어 첨단과학과 연계한 확장이 가능하다. 충북도가 추진하는 각종 산업 클러스터와 연계하여 무한한 확장 발전의 가능성도 생겨난다.

청주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하는 에어로폴리스, 괴산 유기농산업, 음성태생산단, 충주에코폴리스, 제천 한방바이오, 옥천 의료기기단지, 남부 3군의 웰빙클러스터 등과 결합하여 상승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종 전 지사 때부터 시작한 충북의 바이오는 이시종 지사에 이르러 '바이오=충북'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했다. 그간 2002 오송바이오엑스포, 2010 제천한방바이오엑스포 등 바이오행사를 충북에서 치렀고, 바이오코리아를 보건산업진흥원과 공동으로 2006년부터 매년 개최함으로써 '바이오충북'을 각인시켰다. 2014 오송국제바이오산업엑스포로 바이오충북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 2013 오송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와 2015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로 그 분야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국내외에 바이오의 이미지를 충북에 정착시킨 것은 민선5기의 분명한 성과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북이 세계바이오분야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게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부동의 위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눈앞에 나타나는 단편적인 성과를 얻기 위한 소모성 사업보다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업이 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이오페스티벌이다. 국제현미경사진전, 국제의과학실험경연대회, 국제바이오심포지엄 등이 바이오전문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충북바이오를 인지시키는 사업이 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바이오코리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처럼 '바이오는 충북으로'라는 인식은 상당한 이미지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과거, 타지역에 비해 이미지가 흐릿했던 충북은 바이오를 선점함으로 제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도약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할 때 중요한 점은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변화를 통해 발전을 꾀하는 시기가 아니라 지속성을 가지고 밀어 올려야 하는 시기이다. 강점을 바탕으로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면 우리 충북은 세계바이오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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