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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미

충북여성발전센터 연구개발팀장

얼마 전 종영한, 응답하라 1994. 그 드라마의 타켓층인 94학번은 아니지만 삼풍백화점, 금융위기, 서태지, 김일성 사망 등 당시를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큰 이슈들과 함께 그 시절 추억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시대와 일상을 잘 연결해 전 연령층의 공감을 이끌어낸 많은 이야기 중 필자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1997년 말 결혼을 한 달 앞둔 쓰레기와 나정의 이야기다. 1997년 말은 금융위기로 온 국민이 더욱 추웠던 겨울을 보냈다. 당시 증권가에 종사했던 필자는 우리나라의 많은 중견기업과 주식들이 몰락하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했고 98년 정리해고라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 시기에 특히 공감이 간다. 졸업을 앞둔 나정을 둘러싼 환경도 무관하지 않았다. 나정이는 결국 취직이 되지만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로 가야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결혼을 한달 앞둔 상황, 쓰레기는 돈은 자기가 벌 테니 가지 말라고 하지만, 이번이 자신에게 마지막 취직 기회라고 생각한 나정은 결혼을 1년 미루자 한다. 쓰레기는 단호하고 나정이는 실망하고..그러나 다음 날 아침 쓰레기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니가 돈 다 벌 테니 나보고 호주가자고 하면 나도 못 가겠더라. 다녀온나, 기다릴게". 청첩장까지 돌려 놓은 상황에서 나정이의 행동도 쓰레기의 결심도 설득력이 없다는 평이 있었지만 필자는 그 결정이 아직은 어린 연인들의 어른스러운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는 전도유망한 레지던트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은 양가에서 모두 환영받는지라 나정은 열쇠 몇 개 없이도 일명 士자 남편을 만나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나정에게도 직업이란 것은 결혼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염원이던 첫사랑과의 결실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길을 감행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쓰레기는 진정 연인의 입장이 되어 결정을 내려 주었다. 나정을 자신의 '집사람'이 아닌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갈 사회인으로 생각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정리해고된 필자 역시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 다시 사회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그때, 직장에서의 자신의 입장이 불안해 지면, 신기술(?)을 익힌 필자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묵묵히 6학기 등록금을 부담해준 남편이 옆에 있어주었다. 다행히 그때 익힌 신기술은 지금 필자가 주체적인 삶을 살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직장에서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남편도 가장으로서의 부담을 조금은 놓을 수 있다고 든든해하고 있다. 남성에게 부과된 가족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 정말 과도한 부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맞벌이를 선호하고 직업이 있는 여성을 선호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여성은 직업세계에서도 가정에서도 보조적인 존재이다. 과도한 역할부담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남성은 그 역할을 여성과 나누려하지 않는다. 그 역할이 지금 남자로서 누리고 있는 모든 지위와 권리, 그리고 권력을 보장해주기 때문은 아닐까·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여성, 그리고 성역할과 그에 따르는 역할부담에 대해 유연한 생각을 하는 남성들이 늘어나 조금 더 행복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여유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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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