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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9천443시간 봉사' 정연남 청주한마음적십자 봉사회 부회장

한해를 봉사라는 행복으로

  • 웹출고시간2013.12.30 17:11:29
  • 최종수정2013.12.30 17:11:29
나는 바보였다. 때 되면 일어나 밥 짓고, 애들 씻기고, 남편 출근시키고….

낮은 무료했다. TV 연속극을 틀어놓고 청소기를 돌렸다. 이따금 옆집 새댁과 수다를 떨었고, 그러다 지치면 쇼파에 널브러져 코를 골았다.

늦은 오후, 어떤 저녁 찬거리를 할까 생각하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정연남(여·56·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씨는 인생 자체가 잘 뚫린 아스팔트 같았다. 큰 굴곡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쾌나 큰 농사를 진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격동의 60~70년대를 지나오면서 배고픔이란 것도 잘 몰랐다.

그러다 1983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시골집에서 30분 거리에 살았던 중학교 동창과 인연이 닿았다.

정연남 청주한마음적십자봉사회 부회장이 자신의 봉사인생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 임장규기자
남편은 맥주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1993년 청주로 발령이 나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두 딸은 어느새 31살, 28살의 어여쁜 아가씨로 바르게 컸다.

"정말 전 복 받은 거 같아요. 가족 잘 만나 큰 고생도 안 해보고. 그런데 말이죠? 이상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뭐랄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결혼과 동시에 직장 같은 사회생활을 할 생각도 안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다 아무 의미 없이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 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자신과 함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보지 않겠느냐고.

2004년 1월1일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청주흥덕지구협의회 한마음봉사회에 가입했다.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노란 조끼를 받아들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만 보고 달리기로 했다.

그러기를 만 10년. 하루하루 봉사에 매진하다보니 어느덧 봉사시간이 9천443시간이나 기록됐다. 하루 3시간씩, 1년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10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봉사회 부회장까지 오른 그녀는 스스로 봉사에 미친 것 같다고 했다. 아니, 미치지 않고선 이렇게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미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무엇인가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봉사는 말이에요, 해보지 않고선 그 맛을 몰라요. 달콤한 아이스크림 녹는 맛에 젖어드는 기분이랄까. 정말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황홀한 맛이죠."

아침마다 "출근합니다"라는 인사를 가족들에게 남기고 봉사 현장으로 달려가는 정씨. 한 달에 120시간 정도 봉사하는 그를 이해해주는 가족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는 주로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돌본다. 적십자봉사회원들과 함께 홀몸노인 15명을 내 부모처럼 섬긴다. 매일 같이 안부전화를 하고, 반찬을 해다 나른다. 어르신들이 울적할 땐 자식 같은 말벗이 돼 준다.

정씨는 "매일 봉사할 곳이 있다는 건 그만큼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홀몸노인들이 생활하는 걸 보면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있는 내가 미안할 정도"라고 했다.

이런 그녀도 지난 2007년 큰일을 겪었다. 산사태 수해로 평창 시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하우스 시설도, 땅에 심어놓은 농작물도 모두 떠내려갔다. 남편의 형은 씻을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얻어 이듬해 세상을 등졌다.

온 가족이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적십자가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충북적십자 봉사회에서 평창까지 왔다. 집을 다시 일으키고 밭을 다시 일궜다. 이 때 더욱 간절히 느꼈다. 그동안 살아온 봉사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청주종합사회복지관으로 급식봉사를 나온 정연남씨가 대학생 봉사자와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 임장규기자
어려운 이웃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살아온 지난 10년. 정씨에겐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과 통일부 장관 표창이란 선물이 주어졌다. 새터민 정착에 도움을 줬고, 순수 자비를 들여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로 해외봉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두 딸은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봉사의 삶을 살게 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매월 기부금을 내기 시작했다. 묵묵히 남을 돕는 엄마의 모습은 살아 있는 참교육이 됐다.

그녀는 새해 소망으로 '건강'을 꼽았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건강하고, 또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다보면 봉사시간 1만 시간을 넘어 2만 시간도 채우지 않을까하는 게 정씨의 바람이다.

"대단하지도 않을 걸 신문에 낸다니깐 부끄럽네요.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어쨌든 제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의 길로 들어섰으면 좋겠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봉사를 어려운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만 있으면 돼요. 보세요, 저 같은 바보도 하는 데요 뭘. 용기를 내세요. 그리고 봉사의 문을 두드리세요. 여러분들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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