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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수필가, 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

오랜 출근생활을 졸업하고 나서 마냥 해방감에 부풀었던 몇 년 전, 집사람이 주제파악 좀 하라는 듯 곱게 눈을 흘겼다.

"고향에 있는 논 그냥 놔 둘 거유?"

마음먹고 있던 일이긴 하나 그동안 맡은 일에 충실 한답시고 집안일을 소 닭 보듯이 하며 살아 왔음을 깨우쳐 주는 한마디였다. 고향이래야 엎드리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이고,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관리를 맡겼던 집안 조카와 상의한 끝에 논을 메꾸어 밭을 만들어 버렸다. 무공해 유기농 먹거리를 직접 가꾸어 보고 싶어서이다. 관할 농협에 조합원 등록을 하고 농기구도 장만했다.

어느 봄날 귀농의 깃발을 힘차게 들어 올렸으나 일꾼이라고는 나와 아내 두 사람 뿐이었다. 일손이 문제였다. 멀리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의 도움도 여의치가 않았다. 우선 버릇처럼 해 오던 새벽 등산을 집어 치우고 그 시간에 밭일을 하기로 했다. 이웃하고 살던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살가운 영농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첫 해엔 가장 쉬운 밭농사라는 고구마와 땅콩, 고추 그리고 푸성귀를 고루 심어 봤다. 일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협착증이 심한 허리가 따라주지 못해 진종일 밭에서 지내고 온 날 밤에는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장마철을 넘기면서 온통 잡초 밭이 되고 빨갛게 익어가던 고추들도 곯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 수확이 제대로 될 이 없었다. 품질, 수량 모두가 함량 미달이어서 인건비는 고사하고 비료 값도 못 건질 정도였다. 허지만 어쩌랴. 다음 해 봄에도 다시 밭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는 감자, 깨, 토란 등을 추가했다. 다소 요령이 생겨 첫 해 보다는 힘이 덜 들고 수확도 다소 나아졌다.

3년차의 해, 쉬운 방도를 찾다가 생각지도 않던 대파농사를 짓게 될 줄이야. 인근 밭에서 대파농사를 짓는 영감 때문이었다. 작년에 짭짤한 수확을 올렸다며 "힘 안 들게 도와 줄 테니 함께 해보자"는 권유에 처음엔 '농약 많이 쓰는 작물'이란 생각이 들어 시큰둥해 하다가 '무 농약 재배 노하우'를 들고 나와 꾀는 바람에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밭 절반의 넓이에 파종한 씨앗이 돋아 나 봄바람에 하늘거릴 때 기대에 부풀었으나 웬일인지 싹이 커 갈수록 똑같이 심은 달인(영감)의 밭 파와는 달리 우리 밭의 파는 쑥쑥 자라지를 않는 것이었다. 주라는 밑거름 다 주고, 뿌리라는 비료 다 뿌렸건만 성장속도가 느리기만 했다. 아둔한 탓일까. 기술지도가 먹혀들지 않는 것이었다. 키가 작으면 어쩌랴. 끝까지 정성을 기울이기로 했다.

긴 장마철, 뽑고 나서 돌아보면 또 솟아나는 것이 잡초다. 부득이 일꾼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끝까지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초심을 지켰음에도 인근 파밭을 덮친 노균병, 잎마름병이 우리 밭을 살짝 피해서 갔다.

늦가을 어느 날, 밭떼기로 파를 매입하는 중간상인들이 달려들었지만 짜리몽땅한 우리 파는 '돈을 붙여줘도 싫다'며 툇자를 놓았다. 생명농업은 구호일 뿐 농약을 주더라도 미끈하게 땟물이 나야 상품가치가 있나 보았다.

마음을 비우고 지인들을 불러내 마음껏 뽑아 가라고 인심을 썼다. 가까운 동네 아주머니들도 불렀다. 화답을 하듯 누군가가 막걸리와 빈대떡을 사오자 늦가을 들판에 정이 넘치는 잔치판이 떠들썩했다. 내친김에 사회복지 시설에 한 트럭 봉사도 했다.

그 해 겨울 내내 우리 집은 파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단독주택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성인병 예방, 혈액순환에 좋다는 파를 마지못해 즐겨 먹다보니 우리 부부의 기호식품이 되어버렸다.

대파농사는 손해만 본 것은 아닌 듯하다. 고혈압 환자로 관상동맥 조영 시술까지 받았던 내가 정기검진에서 뜻밖에도 '매우 양호함' 판정을 받은 것이다. 파를 많이 먹은 덕분일 듯 했다.

나의 농사는 어설프게 끝이 났으나 우리 식단의 모든 반찬에 들어가는 국민채소인 대파의 친환경 유기농 재배가 널리 확산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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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