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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성문인협회장

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송 보 영

그의 품은 넉넉하다. 그는 변신의 귀재다. 그의 품안에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서 촌로의 밥상이 되기도 하고 왕후장상의 밥상이 되기도 한다. 왕후장상의 밥상에 오를 때의 그는 곱게다진 고기에 갖은 양념을 넣어 재운 뒤 구워낸 맥적을 싸 먹기 위한 것이라면, 촌로의 밥상에 오를 때는 식은 밥 한 숟가락에 질박한 항아리에서 방금 퍼온 된장을 넣어 싸기 위해 쓰여 진다. 그는 무엇을 넣어 싸도 나름의 맛을 낸다. 재료의 궁합을 따지지 않고 그의 품안에 들기만 하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그는 어울림의 고수다.

어린 시절 내게 있어서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일반 적인 상식으로 쌈은 푸르고 싱싱해야만 제 몫을 다하는 것인데 내가 먹었던 그는 뜨거운 솥뚜껑 위에 얹어서 노글노글 해진 부드러운 상태의 것이어야만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유난히도 마라리아를 앓는 이들이 많았다. 한 여름의 절반은 마라리아로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내게 솥뚜껑 위에서 담금질을 당한 그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였다. 마라리아의 치료제 중 가장 많이 쓰였던 것이 그 때 말로"겡기랍"이라 불리던 지금의 항생제에 해당하는 약이었다. 그 약이 얼마나 쓴지 제대로 삼키지 못해 고생하는 어린 딸을 보며 안쓰러워하던 어머니가 내린 처방이 부드러워진 상추 잎에 "겡기랍"을 싸서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처방은 적중했다. 그렇게 해서 먹어보니 부드럽고 매끈매끈해진 상추 잎 덕분에 쓴 맛이 느껴지지 않아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쌈은 무엇인가를 싸기 위해 존재한다. 제 스스로는 별다른 모양도 맛도 내지 못한다. 저 혼자일 때는 하나의 푸른 잎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쌈을 싸기 위한 재료가 들어가면 그들을 품어 안고 동그란 모양새를 갖춘다. 그 뿐인가. 한 잎의 쌈에 왕후장상의 쌈과 촌로의 쌈을 함께 넣어도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을 한데 버무려 또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주어진 삶의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맥적을 넣어 쌈을 쌀 때도 있고 식은 밥에 된장을 넣어 쌈을 싸야 하는 길목에 다다를 때도 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하기도 하고 거친 파도에 휩쓸려 좌초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것저것 집어넣어 한 쌈 싸는 것과 같은 이치이거늘 이런 과정들을 겪어 낸 뒤라야 비로소 삶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그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그는 나를 향해 속삭인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폭 넓게 수용 할 줄 아는 넉넉함을 가지라 한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만 보려 하느냐고 다그친다.

"푸르고 싱싱해야만 제 몫을 다 하는 것이 내 모습인줄 알지만 때로는 뜨거운 솥뚜껑위에서 담금질을 해 부드러워진 나도 너에겐 귀한 것으로 쓰여 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 네 가슴 속에 남아 잘 못 박힌 못처럼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으면서 생살을 후벼 파는 가시 돋친 것들을 뽑아 버리라고" 한다. 그래야 한 쌈 싸는 데 툭툭 불거지지 않는다고 속삭인다.

어느새 봄여름이 가고 늦가을 햇살이 서산마루에 걸려 있다. 이제 머지않아 시린 겨울이 찾아 올 것이다. 세찬바람 몰아치기 전 가을 햇살이 머무는 툇마루에 쌈 한 소쿠리 가져다 놓고 푸짐하게 한 쌈 싸야겠다.

목에 가시처럼 걸려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을 유발 하던 것들, "겡기랍"보다도 써서 도저히 넘기지 못해 아직까지도 입안에 맴돌고 있는 것들, 그도, 저도 모두 다 집어넣어 한 쌈 크게 싸야겠다. 잘 넘어가지 않으면 그를 솥뚜껑 위에 얹어 보들보들 해지면 다시 싸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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