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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가을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맑고 투명한 햇볕이 자꾸 가을이라고 함성을 지르는 듯하다. 왠지 집에 있기가 아까운 날이다. 바람도 쏘일 겸 강가로 나왔다. 따사한 가을볕에 하얗게 빛나는 꽃무리가 눈길을 끌었다. 구절초이다. 함박 머금었던 꽃망울이 터져서 고고하게 가을을 품어내고 있다. 여문 곡식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 불던 가을바람도 구절초 앞에서 잠시 멈추었나보다. 바람을 맞이한 구절초가 하늘하늘 춤을 춘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와 닿는다. 참 좋다. 숨을 깊게 들이쉬니 온몸 구석구석 구절초 향기가 가득하다. 갑자기 힘이 솟는다. 알 수 없는 행복감에 마냥 미소가 흐르고 또 흐른다.

구절초는 5월 단오에 줄기가 5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 되면 9마디가 된다하여 구절초라고 불린다. 구절초 잎은 다른 식물에 비해 탐스럽지 못하고 갈라져있어 볼품이 없다. 하지만 꽃망울이 터지면 청초한 자태에 한번 감탄하고 향기에 두 번 반하며 쓰임새에 세 번 놀라는 우리나라의 토종식물이다.

구절초는 가을꽃이다. 구절초 꽃이 피면 가을이고 구절초 꽃이 지면 가을이 간다. 온갖 꽃들이 함박 피어나는 따뜻한 봄도 외면하고. 해바라기, 분꽃, 봉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여름날의 축제도 마다하고, 가을날의 찬 서리를 맞으면서 9월부터 11월까지 꽃을 피우니,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 이름 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구절초는 하얀 꽃이다. 가끔 연보라색이나 분홍색도 있고 품종 개량된 붉은 색 구절초 꽃도 있지만 흰색 꽃이 보통이다. 그래서 구절초는 깨끗한 이미지를 지녔고 순결하고 품위가 있으며 단아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꽃이 신선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른다니.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듯싶다.

구절초는 이로운 꽃이다. 관상용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요리나 약으로도 이용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구절초로 술을 빚고 차로 달여 마셨으며 나물로 만들어 먹었고 꽃 떡을 만들 때 이용하기도 하였다. 또 환약을 만들어 배앓이를 할 때 먹었고 베개 속에 넣어 탈모방지와 머리카락이 세는 것을 예방하였다. <본초강목>에서도 건위, 신경통, 정혈, 식욕부진, 부인병에 좋다고 하였으니, 오래전부터 민간 생약재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음이 틀림없다.

구절초는 쓰임새가 많은 꽃이다. 구절초가 지니고 있는 향은 세균번식을 억제하여 부패를 막아준다고 한다. 구절초를 말려 옷장 안에 넣어두거나 책갈피에 끼워두면 좀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은은하게 풍겨나는 향기에 머리도 맑아진다고도 한다. 또 구절초에서 추출해낸 방향 물질을 이용하여 화장품이나 향수도 만들고 목욕물에 넣으면 약탕이 된다니. 구절초는 사랑 받아 마땅한 식물이다.

구절초는 자랑스러운 우리 꽃이다. 산비탈이나 계곡의 길가, 풀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꽃이다.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에서 산과 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우리 들꽃이다. 그래서 더욱 정답고 소중하다. 요즘 들어 우리 꽃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곳곳에 야생화 단지가 조성되어져, 잊히고 멸종되어가기만 하던 우리 꽃이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구절초는 우아한 자태와 긴 개화기간으로 도시조경에까지 각광을 받고 있다.

구절초는 머잖아 코스모스에게 내어주었던 가을꽃의 대명사를 다시 되찾을 듯하다. 이왕이면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보면 어떨까· 이처럼 이롭고 사랑스럽고 우아한 우리 꽃 구절초가 세계로 나아간다면, 곧 지구촌 곳곳을 장식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지 않을까싶다. 따 놓은 당상이라고 기대하여도 가히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구절초 향이 짙어질수록 가을은 점점 깊어지고 깊어지는 가을만큼이나 구절초를 향한 사랑도 절절해져 소박하지만 야무진 꿈을 잠시 꾸어본다. 구절초의 자태와 향기에 잔뜩 취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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