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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리

시인

한적한 시골,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아래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아주 오래 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린다.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따분해지면 어디론가 자꾸 떠나려 하지만, 그 때마다 온다는 '고도(godot)'와의 약속을 상기하면서 자리를 뜨지 못한다. 사무엘 바클리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의 일부분이다. 현대극의 흐름을 바꿔 넣은 부조리극의 정수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지를 정처 없이 여행하다가 1937년 파리에 정착한 이후 창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이던 1952년 불어로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가 문제의 이 희곡이다.

오지 않는 고도는 대체 누구인가. 고고와 디디는 무엇을 위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대명제처럼 고도를 한없이 기다릴까. 이 작품에서 고도에 대한 해답은 끝내 없다. 그러나 극의 흐름으로 보아 고도는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운명의 굴레거나, 자본과 정치권력이거나,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와 고뇌거나, 아니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처절하게 신음하는 인간 구원, 또는 희망과 자유의 형상화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고도의 실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소망하는 바 가치체계면 된다.

이 작품이 쓰인 때는 세계대전 이후 극도의 혼란기였다.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불안, 공포, 고독, 균열, 허무의식이 터질 정도로 팽배해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비춰주는 실존주의의 거울이다.

갑자기 눈 먼 소경으로 나타난 포조, 노예의 삶을 자청하는 동물 같은 럭키, 자꾸만 고도를 기다리도록 목표의식을 일깨우는 블라디미르, 멍청한 일상사에서 고통을 얻는 에스트라공 등 모두 전후에 나타날 수 있는 불안, 공포, 허무로 균열된 인간들이다. 이들은 현재의 상태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쓸 데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거기에 열중하려 하지만, 불안에 쫓기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들이 구원자를 기다리는 모습은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다.

크나큰 희망으로 새 대통령을 뽑은 지 오래 되지 않았다. 일상화 되다시피 한 북한의 위협도 늘 같은 모양이다. 역사에 대한 일본의 망령도, 후쿠시마에서 파도쳐 오는 원전 오염도 블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이 겪는 공포, 허무, 균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우리 유권자들은 얼마나 많은 장미 빛 꽃다발을 받았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소외계층이 구원되고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고 번영이 울창한 숲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 포조나 럭키처럼 절망한다. 블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처럼 허무의 달빛에 젖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기다릴 만큼 기다려 준 우리에게도 '고도(godot)'는 첫새벽처럼 와야 한다. 고도가 기대치의 허상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의 미래상이기를 염원한다.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상을 수상하자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재빠르게 그의 작품을 번역 출판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즉시 출판되어 서양에서 날아온 '고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심취하고 있었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그 제목(Waiting For Godot)을 '고도(孤島)를 기다리며'로 용감하게 내세웠던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다. 아마도 오역이 아니라 고도(godot=절대가치, 구원자, 진리 등)라는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 의미로 형상화하기 위하여 '외로운 섬', '동경의 세계' '꿈과 이상의 나라'를 뜻할 수 있는 '고도(孤島)를 차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이제 와서 해보게 된다. 오늘의 우리가 구원되어 내일의 이상이 분수처럼 솟구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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