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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심

한전 옥천지사장·경영학박사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1연1행의 짧지만 울림이 강한 시, 아직 한낮에는 더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지 시의 감흥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다시 접한 이 시에는 깊은 그리움이 깔려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매일이 전쟁 같았던 전력공급의 현장에서 보낸 지가 불과 얼마 전 같은데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고, 5일장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의 긴 옷차림, 그리고 짧은 시에도 감성적으로 변하는 걸 보니 벌써 가을이 절반은 다가온 듯하다. 가을이 되니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기억들부터 시작해서 옛 생각에 푹 빠져든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옥천이라는 곳 또한 어릴적 모습과 많이 닮아있어 그런 것 같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황금색은 아니지만 벌써 제법 누르스름해진 벼가 고개 숙이고 있는 들녘이 펼쳐져 있고, 단풍이 서서히 들어갈 것 같은 아름다운 산과 그 아래 잔잔하게 차분히 흐르고 있는 금강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에 그리움이 젖어드는 요즘이다.

반면 가을은 매년 그 정취를 느껴볼 새도 없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가벼운 긴팔 옷을 꺼내 입어 볼까하면 어느새 겨울옷을 준비해야 할 만큼.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우리나라의 자랑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 필자의 학창시절에도 누군가가 우리나라의 좋은 점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으레 두 세 번 안에 나오는 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도 선뜻 사계절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할 만큼 봄, 가을이 짧아지는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고 있고, 무더위를 밀어내고 우리 곁에 올듯한 가을도 금새 겨울에게로 빼앗기면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책상머리에서 일어나 밖을 걸어보자.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높디높은 가을 하늘을 만끽하자.

가끔 본연의 업무인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현장을 나가다 보면 엊그제만 해도 주렁주렁 열려있는 포도나무들은 어느새 그 빛을 잃어가고 있고 여름 내내 계곡마다 빼곡하게 들어차있던 시원한 물도 줄어들고 더위를 식히던 가족들도 오간데 없이 황량하기만 하다. 가을은 이토록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알알이 열려있던 열매, 계곡과 친구, 가족들..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지금 젊은 세대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시골에서의 어린 추억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스마트폰, SNS, 메신저 등 IT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 반면, 정(情)과 감성, 소중한 추억들은 빼앗아 간 기분이다. 이 짧은 가을에라도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뜸했던 사람들과 연락도 해보고 형형색색의 단풍 속을 걷기도 하며 겨울이 오기 전에 올 가을만의 추억, 사라져가는 감성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주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남성 이었는데 사계절 중 대개 가을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껏 누리시길! 올 가을을 좀 만져보자. 그리고 한껏 물이들 산과 숲에 들어가 다 내려놓고 숨도 좀 쉬어보자! 꼭 가족이 아니어도 마음 터놓고 자연의 경치에 푹 빠져 누워보자. 어릴 적 여름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북두칠성 자리를 찾았던 것처럼 지금껏 달려온 길을 품에 안아보자! 우리네 인생살이 힘이 들고 어려워도..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 속에 한고비를 못 넘기시는 어르신들의 부고(訃告)소식과 투병생활 끝에 생을 마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뜻밖의 사고의 소식 등을 접하게 되는 요즘 마음 한구석이 바빠지는 일상으로 돌아와 내 자신의 깊은 소회와 삶의 현주소를 찾아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들 때부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는데 이 가을에 인생의 황혼이 지나기 전에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다 알 수도 측량할 수도 없지만 인생의 삶속에 깊은 영원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사모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필자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있을 때 잘하자'이다. 기회가 주어진 딱 한 번을... 사랑으로 깊이 젖어 함께 걸어보자! 지나온 시간들 속에 긴 여행을 함께한 이들과 이 짧은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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