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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여울에 부서지던 기타선율

유년시절 그날도 밝은 달이 지켜보고 있었다

  • 웹출고시간2013.09.16 18:48:19
  • 최종수정2013.09.18 04:29:13

저 너머 산촌에는 내 어머니가 있다. 저 너머 산촌에는 내 아버지가 있다. 불러도 부르고픈 내 어머니, 보고도 보고픈 내 아버지. 쭈그렁이가 다 된 내 큰 오라비도 저 너머에 있다.
 
어머나, 벌써 벼가 이렇게 자랐네? 참 누런색이 예쁘기도 하구나. 저 너머 산촌에선 두 해전 심어놓은 감나무도 잘 크고 있겠지. 지난 설 눈을 뜬 바둑이도 잘 자라고 있겠지.
 
저 너머 산촌이 다가온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아이야, 힘 내거라. 저 너머 산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단다.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 황금벌판. 오색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젊은 아낙이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 길을 재촉한다. 오백(五百)의 세월 추석을 함께한 느티나무가 푸근한 인사를 건넨다.
 
글 /임장규기자
사진 /홍대기 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보름달이 두둥실 높이 떠올랐다. 계수나무도 보이고 떡방아 찧는 토끼의 형상도 예전과 다름없다. 하지만 저 달을 바라보며 '토끼다' '아니다'라며 우기던 친구들의 모습은 간 곳 없다. 돌아 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유년 시절, 그날도 오늘처럼 밝은 달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웃마을에 살던 친구가 더벅머리에 기타를 메고 찾아왔다.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당시는 머리를 기르고 기타나 들고 다니면 불량 청소년쯤으로 생각했으니, 그만큼 생활이 어려웠고 취미생활은 생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친구와 나는 어른들 눈을 피해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가 자갈밭으로 나갔다. 넓지 않은 강은 달빛을 받아 마치 은비늘을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였다. 서툰 솜씨로 기타 치며 나에게 들려준 노래가 비 내리는 고모령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자나 음정은 관심도 없이 그저 호기심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 싶다.
 
우리는 그때 막 사춘기를 지날 무렵으로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인생을 논하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을 비난하며 폭발 직전의 생활을 계속해오고 있던 때였다.
 
마치 우리가 처한 불우한 현실에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납작한 돌을 주워 은비늘을 깔아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강물에 마구 던졌다. 우리들의 마음과는 달리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멀어져가는 모습은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웠다. 그러다 뒤로 벌렁 누워 은하수를 바라보며 푸른 꿈을 그렸다. 그것도 지겨우면 다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한가위 명절에는 면 단위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가요 콩쿠르를 많이 열었었다. 대회가 열리면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 3일씩 걸렸다. 보통 예심이 이틀 정도 걸렸는데 신청할 때 돈을 내고 예선을 통과하면 또 돈을 내야 했다.
 
가요콩쿠르에서는 수상자에게 값싼 상품을 주었다. 그것도 1~3등까지는 어느 정도 내정이 되어있고 나머지 4~7등은 알아서 주던,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었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내성적인 친구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근 마을에서 열리는 콩쿠르가 있으면 꼭 출전했다. 나는 어두운 밤길을 20~30리씩 걸어가 친구를 응원했지만, 고작 돌아오는 것은 4~5등 정도였다.
 
시골에서 꿈을 펼치기 어렵다고 생각한 친구는 어느 날 홀로 서울로 떠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이 되는 길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울 게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건너려던 친구의 꿈은 높은 파도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창밖 달빛이 더욱 교교하다. 컴퓨터 파일을 열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아릿한 마음은 반세기 이전, 은비늘이 반짝이던 강가 자갈밭으로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박순철 작가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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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