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옥천 내수면 어부 손학수씨 30년 나룻배 인생

"아들 내외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콧노래가 나와"
붕어·빠가사리 잡아 추석 준비… 배스가 야속할 뿐
"오늘 잡은 뱀장어는 새아기 푹 고아줄 것"

  • 웹출고시간2013.09.16 18:35:52
  • 최종수정2013.09.18 04:30:34

편집자

충북은 내륙지방이다. 팔도(八道)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통 큰 대하(大蝦)를 잡아먹는데 충북 사람들은 기껏해야 1㎝ 짜리 '새뱅이'를 맛있다고 먹고 있으니 참…." 물론 바다가 없는 충북을 풍자적으로 빗댄 말이긴 하다. 그래도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건 충북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나 보다.

비록 손바닥만 한 대하는 육지 건너온 걸 먹어야 하나 그렇다고 기죽을 것까진 없다. 바닷가 사람들이 쉽게 맛보지 못하는 강(江)과 호수(湖水)의 민물고기를 우리는 배터지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륙의 젖줄, 대청호에서 갓 잡힌 뱀장어를 톡톡 썰어 소주 한 잔 걸치는 그 맛을 어찌 글로 죄다 표현하랴. 우리네 오감(五感)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또 그들만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그물을 던지는 '내륙의 어부'들을 만나보자.
강물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대청호의 아침을 깨운다. 밤사이 주인 몰래 집 밖으로 도망친 수탉들은 나뭇가지에 똬리를 틀고 앉아 목청을 뿜어댄다.

"야 이놈들아, 시끄러워!" 콧수염이 수북한 산골 아저씨의 불호령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앞뒤로 까딱이며 줄행랑을 친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진걸마을. 이름도 없는 산 중턱을 넘고 넘어야 속살을 드러내는 산골 중의 산골마을이다. 모든 집을 합해봐야 고작 11채다.

1980년 댐 건설로 대청호가 생길 때까진 6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손씨와 태씨, 육씨들이 많았다. 물이 점차 차오르면서 산 아래 있던 집들은 산 중턱으로 강제이주 당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새 일거리를 찾아 도외지로 나갔고, 강나루의 집터는 잡초만 무성한 벌판으로 변했다.

끝내 고향을 등지지 못한 몇몇 젊은이들은 '어부'의 길을 택했다. 어릴 적 금강 상류에서 고기 잡던 실력을 믿고 나룻배 하나씩을 만들어 그물을 던졌다. 물고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요놈들, 얼마나 들었나 보자." 내수면 어부 손학수씨가 잔뜩 들뜬 표정으로 이틀전 쳐놓은 각망을 들어올리고 있다.

ⓒ 임장규기자
"아다리(손에 닿는 감촉을 뜻하는 일본말) 왔어!" 이른 아침 마을 맞은편 호수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는 손학수(64)씨.

이틀 전 쳐놓은 각망(角網) 중 첫 번째를 들어 올리자 뱀장어 2마리가 그물 안에서 팔딱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두 번째, 세 번째 망은 연거푸 '꽝'이다. 꼴도 보기 싫은 배스와 블루길만 가득 올라온다.

그래도 일당은 채운 거라고 한다. 내다팔면 뱀장어 1㎏에 12만원을 받는데 700~800g짜리 2마리를 건졌으니 말이다. 만선(滿船)의 욕심이야 매일 있다만 어디 자연의 이치가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던가. 그저 딸려 올라와 준 멍청한 물고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손씨는 "장마철 때 비도 적게 오고 요즘 녹조도 많이 끼어 어획량이 부쩍 줄었다"고 했다. 다행히 첫 번째 들어올린 그물에 '귀하신 몸' 뱀장어가 두 마리나 들어 있다.

ⓒ 임장규기자
"자, 보시오. 배스랑 블루길이 80~90%라오. 이놈들 때문에 토종 어종이 죄다 죽었어. 붕어, 잉어, 빠가사리(동자개), 쏘가리 할 것 없이 먹어치워요. 낚시꾼들이 그놈의 손맛인지, 지랄인지를 본다고 얘들을 자꾸 풀어놓는 바람에 우리 같은 어부들만 피해를 본다오."

손씨는 7~8년 전만해도 붕어를 하루에 700~800㎏씩 낚았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징그럽게' 잡았다. 당시 돈으로 일당 200만원이 넘었다. 지금의 한 달벌이보다 많았다.

내수면 어업으로 돈 버는 시대는 벌써 옛말이 됐다. 무엇보다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블루길·배스 같은 엄청난 포식 외래어종이 첫 번째 원인이요, 해마다 범위를 넓히는 녹조현상이 두 번째 원인이다. 대청호를 가득 채우던 붕어는 이 두 가지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배스와 블루길을 수매하고 있으나 내수면 어부들에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워낙 단가가 낮아서다. ㎏당 3천200원 정도를 쳐주는데 붕어 시세가의 3분의 1도 안 된다. ㎏당 12만원의 뱀장어와는 비교할 가치도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룻배 한 척에 700만원, 동력엔진 1천만원의 투자비용을 뽑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물을 마르고 닳도록 던져야 한다. 다소 무식한 것 같아도 그게 내수면 어부들의 삶이자 운명이다.

손씨가 팔뚝보다 더 큰 뱀장어 두 마리를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 임장규기자
그래도 요 며칠 새 근심걱정이 싹 날아갔다. 그물도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물고기가 많아서가 아니다. 마음이 풍족해져서다. 추석이 다가오니 아들 내외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콧노래가 나온다.

손씨는 반평생 물고기를 잡아 외동아들을 키웠다. 하루도 빠짐없이 트럭에 태워 초·중·고등학교 12년을 옥천읍내 학교로 등·하교시켰다. 남들처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 한 마리를 판 것도 아니었다. 물고기 수천, 아니 수만 마리는 족히 잡아야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들(33)이 지난해 이맘 때 장가를 갔다. 아버지한테 배운 기술인지 몰라도 어디서 참한 목포 아가씨를 덥석 물어왔다. 지금은 구미 전자업체를 다니는데 올 설에는 바빠서 오지 못했다.

"아직 손주 소식은 없어. 이 녀석이 만들 때도 됐는데. 이번 추석 때 오면 슬쩍 물어보려고요. 만약 없다면 내 이걸 가만 두나 봐 허허." 처음으로 며느리와 명절을 보낼 기쁨에 손씨의 입고리가 콧수염을 넘어 귀까지 찢어진다.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아침에 잡아온 뱀장어를 수족관에 넣으려하자 부인 천경희(56)씨가 남편의 손을 덜컥 잡는다. "내다 팔 생각은 하지도 마요. 내 푹 고와서 새아기 먹일 거니깐. 몸이 건강해야 아기도 푹푹 낳는 거 몰라요?" 그제야 손씨가 '옳지'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소박하면서도 풍만한 추석을 머릿속에 그리는데 대청마루 건너 나룻배 몇 척이 훑고 간 금강이 잔잔한 물보라를 만들어낸다.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 낮달(月)은 말없이 차오른다.

/ 임장규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