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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대부' 김규흥 장군 옥천 생가 방치

지붕 곳곳 누수…나무 썩고 흙 떨어져 원형훼손
군, 향토유적 지정 후 무관심…후손들, 대책 요구

  • 웹출고시간2013.08.13 19:46:40
  • 최종수정2013.08.13 19:46:40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범재 김규흥(1872∼1036) 장군의 생가가 심각한 누수 등으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어 광복절을 앞두고 후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 옥천군은 보존을 위해 향토유적으로 지정(2009년 12월28일), 지원을 조례로 정해 놓고도 홀대 등 무관심속에 유서 깊은 독립운동가의 생가가 소리 없이 쓰러져 가고 있다.

독립운동가 김규흥 장군의 손자인 김치영씨가 생가로 들어가는 문이 넘어질 처지에 놓여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다.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춘추민속관(관장 정태희)과 후손에 따르면 춘추민속관내 별관(건축면적 220㎡) 문향헌(聞香軒)은 1760년(영종 36년) 문향 김치선 선생이 건립한 250여년된 대표적 전통 한옥이다.

1872년(고종 9년) 6월 김 장군은 이 고택에서 태어나고 생활하며 성장했다.

조부의 기대를 받으며 향리에서 공부를 하다가 상경한 김 장군은 당대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했고 충정공 민영환과도 가깝게 지냈다.

당시 김 장군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광복의 대업을 도모하기 위해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중국에 밀사로 파견되지만 사전에 발각돼 반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이후 1908년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도독부 총참의 겸 육군 소장직을 수행했다.

이어 1922년 흥화실업은행을 설립해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무관학교를 만들어 항일세력을 양성하다 1936년 중국 천진에서 65세 나이로 생을 마친다.

손문과 신해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김 장군의 독립활동은 중국에서 더 널리 알려진 인물.

정부는 김 장군의 활동을 뒤늦게 인정해 1998년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했고 지난 2010년 생가에서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김규흥 장군의 손자인 김치영씨가 낡고 오래돼 누수되고 있는 조부 생가를 돌아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김 장군의 생가는 10년전부터 예술인 정태희 관장이 주인이 되면서 사비를 털어 보수 및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가는 현재 지붕이 낡고 오래돼 적은 눈비에도 누수가 심해 기와 교체 등 전반적인 보수가 절실한 실정이다.

이에 춘추민속관은 작년 향토유적 관리 및 보수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의원들의 인식부족으로 군의회에서 전액 삭감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처럼 모두가 외면하는 동안 김 장군의 생가는 기와를 받치고 있는 나무는 점점 썩어 들어가면서 견디질 못한 지붕 밑 흙이 떨어져 나가는 등 건물전체에 변형이 우려되자 장마철 더 이상 훼손을 막기 위해 지붕 곳곳에 비닐을 덮어 놓은 상태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먼 이국땅에서 몸을 던져 활동한 애국지사에 대한 배려 없는 현실 때문에 쓸쓸히 생가는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김 장군의 생가 오른쪽 건물은 우국지사 괴정 오상규 선생이 살았고 흥선대원군이 야인시절 자주 찾아와 벗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유서 깊은 건물은 급기야 생가로 들어가는 문마저 기울면서 곧 넘어질 처지에 놓였다.

독립운동가 김규흥 장군의 손자인 김치영씨가 중국에서의 조부의 활약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후손인 손자 김치영(80·옥천읍 하계리)씨는 "이 건물만 보면 조부께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였다는데 대해 항상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옥천에서 유일한 독린운동가 생가가 오래되고 낡아 훼손될 위기에 놓여 옥천군에 대책을 건의했지만 예산타령만 할뿐 관심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인근에 육영수 여사 생가와 정지용 시인 생가는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새로 짓는 등 관리까지 하면서 정작 독립운동가의 생가는 간판 하나 없이 홀대받고 있는데 대해 분통이 터진다"며 "자치단체 협조가 어렵다면 정부차원에서 지원되고 관리됐으면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옥천 / 손근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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