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은 통일 신라 때 남석천, 고려 때에는 심천, 조선시대 때 석교천, 대교천이라 불려왔으며, 오늘날은 무심천이라 불려오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양지 바른 무심천에 한 여인이 오두막집에서 다섯 살의 아들과 같이 살았는데 집 뒤로는 맑은 물이 흘렀으며 통나무 다리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낯선 행인이 찾아왔는데, 여인은 자기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일터로 나갔다. 아이를 돌보던 행인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여인의 통곡소리를 들었다. 그 때 행인이 눈을 떠보니 아이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그 여인에게 들려 있었다.
아이는 행인이 잠든 사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죽은 아이를 화장시킨 후 잿가루를 이곳 무심천에 뿌리며 명복을 빌었다. 인근 사찰내 많은 승려들도 이를 불쌍히 여기며 아이의 명복을 빌었다. 아이가 죽은지 백일 만에 통나무 대신 돌다리가 세워짐에 그 후부터 남석교라 불리어졌다. 사람들은 애처로움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심하게 흐르는 냇물이라며 오늘날까지 이 냇물을 무심천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설화는 지나는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설화 속의 냇물은 무심하게 흐르며 쓸쓸함이 맴돌았지만 요즈음의 무심천은 청주 시민의 휴식처로 모두에게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날마다 새벽을 가르면서 무심천으로 달려 나오는 시민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파란 하늘 아래, 해맑은 공기를 흠뻑 마셔댄다. 조깅을 하는 사람, 다정히 산책하는 사람, 다양한 동작으로 엮어지는 기체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저마다 무심천과의 추억을 알알이 담아가고, 하얀 백로 떼들도 덩달아 너울너울 춤을 추어 댔다.
전날 나는 오랜 시간의 술자리를 가졌더라도 먼동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이불을 걷어차고 무심천 파란 잔디밭으로 달려갔다. 수십여 명의 어른들과 동그랗게 모여 기체체조를 한 동작씩 정성을 다하면서 뼛속까지 느낌이 가도록 전신운동을 했다. 어느새 나의 온 몸은 구슬땀으로 번지며 굳어진 몸도 풀리고, 심신도 거뜬해지기도 하면서 내 마음도 풍요로워지면서 무심천의 물고기도 은비늘을 번뜩이기도 했다.
은빛구슬의 이슬방울은 풀잎 끝에 맺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면서 무지개 동산을 이루기도 했다. 어쩌다 풀잎 아래로 미끄럼 타는 모습에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곳 무심천에는 어류가 13종, 식물이 67종, 곤충이 24종, 조류 13종의 생태계를 이루면서 청원, 청주시민과 더불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무심천 하늘 한복판에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내 눈길과 마주하려는 순간, 평화로운 무심천 대자연의 세계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냇물은 흔히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그러나 무심천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어 많은 사람들마다 독특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지난날 무심천은 수원이 딸리고 폐수 분리가 안 되어 악취가 만연했다. 지금은 제방뚝 양쪽 가까이에 하수 집하장은 물론 하수 처리장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대청호와 연결시켜 날마다 40여 톤의 쾌적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지금은 맑고 깨끗한 1급수에 가까워 많은 고기 떼와 백로들이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안식처로 탈바꿈 되어감에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심천의 곳곳에는 철을 가리지 않은 채 낚시꾼들도 간간이 선을 보이면서 낭만의 자태를 보이고 있다. 한 번에 몇 마리씩 낚아내는 평화로운 정경을 감상하노라면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무심천의 깨끗하고 신비스러움을 만끽함은 물론 각박한 세상에 마음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우리에게 선물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움과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수십 마리의 백로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기는커녕 멋진 학춤까지 경연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쪽 다리를 숨긴 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는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때 마냥 신비롭고 평화스럽다.
백로는 단숨에 물고기를 채어 자신의 부리 안으로 삼켜버리는 묘기를 보이기도 한다. 한 곳에 수십 마리의 백로 떼가 운집하여 정겨움을 가지다가 동시에 하늘 위로 나르면서 장관을 이루었다.
이곳 무심천의 벚나무는 겨우내 움추렸다가 매년 4월에는 하얀 눈송이 같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오늘도 무심천으로 출퇴근하면서 하얀 벚꽃의 물결은 내 마음까지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하얀 물결 아래, 개나리꽃이 만개하여 노오란 크레파스를 칠해놓은 듯 대 장관을 이루고, 무심천 제방 위에는 벚꽃이 진을 치며, 하얀 파도의 물결을 이룬 축제의 열기는 더해졌다. 나 역시 해마다 아내와 같이 하얗고 노란 꽃의 세계로 연례행사처럼 달려와 사진도 찍고 무심천의 향기에 마냥 취하고 있다.
장마 때가 되면 무심천은 곳곳마다 모래가 쌓이고 침식되어 갖가지 작은 섬들이 형성되어 많은 고기떼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물고기들의 은식처인 버드나무 등의 푸르름으로 시민들에게 녹색수도에 도움을 주면서 시원함과 마음의 여유까지 주고 있다.
어둠이 묻어나면 가족끼리, 같은 동료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루면서 무심천의 파란 둔치에서 아름답고 편안한 쉼터로써 정겹고 돈독한 나눔의 장도 마련되고 있다. 새벽을 가르는 무심천에서 오늘도 기를 살리면서 건강을 달리는 시민들은 저마다 "사랑한다. 무심천아!"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사랑할 것이다.
청주통합시가 되면 청원군민과 청주시민이 무심천을 더욱 사랑하는 시민의 젖줄이 될 것이다.
장병학 약력

(저서) 꿈을 주는 동시(동시집), 늘 처음처럼(수필집)
(수상) 한국교육자대상, 충북단재교육상, 황조근정훈장,
충북수필문학상, 청주문학상, 베스트 의원상
(역임) 충북수필문학회장, 청주문인협회장
(현) 국제PEN문학 한국본부 충북위원회 회장
충청북도의회 교육의원